오늘의 묵상

(사도행전 3:1~26)②[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꽈벼기 2024. 5. 9. 14:48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사도행전 3:1~26)

 

1~10, 말씀 사역의 역사는 여기에서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을 통해 앉은뱅이가 치유되는 놀라운 권능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도들의 입을 통해 나타난 말씀은 예수 당시와 같이 말씀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적 권능을 불러일으켜 주어 인간의 전 존재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앉은뱅이의 관심은 지금 당장 구걸해서 하루의 끼니를 때우는 일입니다. 구걸을 통해 하루하루 연명하는 앉은뱅이로서는 당연히 그의 최대 관심사가 물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물질적 적선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앉은뱅이가 앉아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성전 미문입니다. 제사장과 율법 교사들 등 저명한 유대교 지도자들을 위시한 수많은 유대인이 자주 출입하던 장소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출입하는 많은 사람은 앉은뱅이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린 영적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근본적인 요건이 결핍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오직 하루의 육적 양식을 얻는 일에 급급하였고 영적 양식에는 무관심하였을 것입니다. 더불어 앉은뱅이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또한, 영적 무감각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고착된 잘못된 관념들에서 그들의 영적 무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나 그의 곁을 지나가는 많은 사람은 육적 형편만 달랐지 실상은 모두가 영적 앉은뱅이 상태에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극도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11~26,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입니다. 설교를 통해 증거되는 것은 예수가 이적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오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생명을 능히 살리기도 하시며 인간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으로 믿었고 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병자를 치유케 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결국, 베드로를 통해 나타난 이적의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 육의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 관계를 이루어 놓으셨고 대신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은 친히 부활하심으로써 성도들 또한, , 육이 부활할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장래에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심으로써 성도들의 영원한 구속자가 되심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것은 영, 육의 구속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육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죄의 세력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앉은뱅이의 전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구속적 의미를 지닌다 하겠습니다.

 

예언의 성취자 되시는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가 성취되었다고 설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자신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5:17)고 말씀하신 사실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성취하신 분으로서 본장에 서술된 앉은뱅이가 치유함을 받은 사실 또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는 예언의 성취를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쩌면 앉은뱅이의 삶일 수도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처럼 자신의 힘으로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상태에서 신음하는 신앙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얼마나 위대하며 강력한 것인지 체험해 보지 못했다면 영혼이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임마누엘 되신 예수의 이름이 지닌 위력을 제대로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살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의 이름 권세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증인은 예수의 삶을 전하는 자입니다. 증인은 예수를 만났으며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목격했으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 시대 사람이 아닌 우리는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의 증언을 토대로 성령을 통해서 2000년 전의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와 같이 증언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능력을 채워주시길 기도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주님의 능력을 실감하며 보여줘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도전과 위로, 죄의 회개에 대한 촉구와 이에 따른 영생의 확신을 조화 있게 전하길 원합니다. 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핵심을 성령의 능력으로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