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욥기36(26-33)-37(1~24)[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꽈벼기 2023. 12. 14. 19:34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욥기36(26-33)-37(1~24)

 

26~33, 엘리후는 본문에서 자연 현상의 제1원인을 하나님의 섭리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기상 현상들을 묘사하면서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셨다’,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기상 현상 자체를 지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임을 강조하여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엘리후가 기상 현상을 열거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결코 불의 하다고 말할 수 없음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다시 말해서 엘리후는 욥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취한 불평의 모습은 인간으로서 취해야 하는 정당한 자세가 아니었음을 본문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배울 점은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심과 동시에 그 지으신 세계를 지금도 당신의 섭리로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또한 피조물인 인간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분이 하신 일을 자연의 법칙과 계시의 말씀을 통해 믿고 받아들여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37:1~5절 엘리후는 천둥소리번개를 언급하여 하나님의 명령또는 하나님의 음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엘리후는 본문에서 천둥을 하나님의 음성에 비유함으로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다른 무엇보다도 두려움과 떨림이 자신을 사로잡았었노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음성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번개는 대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위엄, 악인에 대한 무서운 심판, 예기치 못한 주의 재림 들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엘리후는 본문에서 천둥과 번개를 예로 들어 우둔한 인간의 청각과 시각에 자극을 주어 자연계의 운행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우매하고 교만한 인간이 천둥과 번개라는 자연의 능력을 통해 그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엄위와 능력을 깨닫도록 하려는 엘리후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6~13추위등을 동반하는 겨울철의 우기에 관한 묘사로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숭배하는 인간들은 이러한 기상 변화나 우주의 모든 운영이 자연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엘리후는 그리고 추위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발생하고 조정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엘리후가 자연 법칙을 만드시고 계속 유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언제라도 자연 법칙 또한 변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구름을 예로 들어 자연 현상을 당신의 수중에 두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후는 그들의 할 일을 조종하시느니라’ ‘혹은 징계를 위하여 혹은 땅을 위하여 혹은 긍휼을 위하여 이런 일을 생기게 하신다는 등의 표현을 본문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엘리후가 본문에서 강조하는 점은 자연 형상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축복의 도구로도 쓰이고 징계의 도구로도 이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일기를 통하여 권능을 보이시고 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인간들의 생각과 지혜로 측량되지 않습니다. 또한 성도는 장중한 우레 소리에서 뿐 아니라 세미한 주님의 음성에도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14~24절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하신 일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자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우신 창조의 사역을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엘리후는 특별히 욥에게 의심하는 표현 형식을 사용해 질문하고 있는데 이는 욥이 얼마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질문 속에 욥은 결코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후가 하나님의 오묘하신 일을 깨닫도록 권면하는 이유는 욥에게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직시하여 하나님의 권능 앞에 순종하는 자세를 심어주려는 것이었습니다.

 

21절에서 폭풍이 지나간 후의 청명하고 눈부신 햇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말미암아 구름이 걷혀가고 곧이어 금빛 햇빛이 찬란한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엘리후가 지금까지의 책망과 권고의 태도를 지양하고 엄숙하고 고요한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과 공의를 노래함으로 자신의 변론을 마감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배울 것은 하나님 앞에 선 성도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깊이 묵상하고 인간의 한계를 발견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모든 일에 겸손히 순종하여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시련 가운데 빠져 있는 당신의 배성들을 시종일관 지켜보고 계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때에 크신 권능과 위엄으로 도움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시련의 때에 낙망치 말고 그 시련의 의미를 생각하며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불이 금을 연단하듯 시련은 믿음을 단련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기뻐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분명히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환난을 주시는 의도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극심한 환난에 빠지더라도 자살의 유혹이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짐으로써 주님의 대속 사업을 어긋나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주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막강한 태풍, 엄청난 파도, 땅을 뒤흔드는 지진과 화산 폭발, 무서운 홍수와 해일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천둥소리와 번개 빛처럼 하나님의 큰 위엄을 보여 주는 것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각각 하나님의 음성과 눈빛이 어떠함을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자연은 그대로가 하나님의 은총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구름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이용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징벌의 도구로 쓰이기도 하고, 비를 날라 주기도 하며, 긍휼의 도구가 되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런 일에 비추어 우리는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에도 열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한계를 뛰어 넘을 만큼 크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마음과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좀 더 믿음의 길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우주 만물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으로 자연과 더불어 겸손히 살기를 바랍니다. 높고 높으신 분으로 마음에 두길 원하며 주님 앞에서 바르고 겸손하게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바라보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