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그의 일평생 고통을 당하며 포악자의 햇수는 정해졌으므로]
(욥기 15:17~35)②
17~19절 엘리바스는 욥을 책망하기 위해 빌닷처럼 전통적인 권위를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신뢰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여 욥에게 깨달음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인듯합니다. 특히 엘리바스는 현인들의 지혜가 다른 외부적인 영향 때문에 변질되거나, 비밀스럽게 전해져 온 것이 아니라고 언급함으로써 현인들의 충고는 고대뿐만 아니라 욥이 사는 그 시대에 있어서도 반드시 귀 기울여야만 하는 진리임을 보여 주고자 합니다.
아울러 엘리바스는 자신이 욥에게 하는 충고가 이처럼 신중을 기한 것이므로 만약 욥이 자신의 충고를 무시한다면, 이는 자기뿐만 아니라 현인들까지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욥은 결국 현인들이 염려하는 악인의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엘리바스는 욥이 자신의 충고를 들어야 하며, 오만한 태도에서 돌이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0~35절 엘리바스는 현인들의 지혜에 근거하여 악인들에게 닥칠 고난을 열거합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욥이 현재 당면한 환난을 염두에 두고 변론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악인이 당하는 재난을 먼저제시하고 나서 악인이 징벌당하는 이유를 언급하며, 이와 동시에 욥이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욥이 당면한 고난과 견주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들었던 무서운 소리를 다른 사람을 괴롭혔던 폭군이 들은 소리와 비교합니다. 또 멸망시키는 자가 임한다는 묘사도 스바 사람과 갈대아 사람이 욥의 가축과 종들에게 나타난 사실을 엄두에 둔 것입니다. 결국 엘리바스는 욥이 폭군처럼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악인이 칼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욥에게 이 기다림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악인은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고, 환난과 고통이 그에게 따를 것인데, 이러한 처지가 곧 욥이 현재 당면한 상황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악한 부자가 망하게 되고, 죄인이 재산을 잃고, 흑암이 덮치고, 농작불이 타버리고, 악인이 하나님의 입김에 의해 소멸되고, 허망해지고, 보응을 받게 되고, 풍요를 상실하고, 자녀를 잃고, 장막이 불타는 불행을 겪을 것이며 이런 고난을 겪는 이유는 악한 생각과 불의와 궤휼 때문이라고 단정합니다. 이처럼 본문에서 엘리바스가 악인이 받을 징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욥의 당면한 고난을 인과응보 논리로 타당성 있게 설명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결국 본문을 통해서 엘리바스가 말하고 있는 논지가 얼마나 편협한지를 암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엘리바스가 언급한 악인의 운명에 대한 평가는 개별적으로 살펴볼 때 수긍이 가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욥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엘리바스의 글을 읽어 나간다면 엘리바스가 빈약한 삼단 논법 가운데 빠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엘리바스는 악인의 고난과 욥의 관계를 삼단 논법적 추론으로 풀어나갑니다. 그래서 ‘악인은 고난을 당한다’,‘욥은 고난은 당한다’,‘그러므로 욥은 악인이다’라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바스의 논법은 욥의 상황과 신앙적 고뇌를 깊이 헤아리지 못한 처사로 그의 성급함과 전통에 치우친 편협한 신앙관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악인의 운명을 언급한 엘리바스의 진술을 통해 포괄적인 신앙관을 가져야 하는 당위에 대해 도전을 받습니다. 편협한 신앙관은 자신을 성숙시키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타인들에게까지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편협한 신앙관을 형성시키는 우리들의 체험, 지식과 관습화된 통념을 항상 살아있는 말씀을 통해 점검받아야만 합니다.
★악인의 길은 뻔합니다. 멸망의 날이 벌써 작정되고 끝까지 유리방황하면서도 그 보응은 허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은 잔악하여 악을 자행하는 자들을 더욱 선망하면서 추켜세우고 심지어 그런 자를 영웅처럼 찬탄하기도 합니다. 악의 기만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악행은 궁극적으로 죽음의 함정에 떨어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신차려 그런 기만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영적인 진리를 이해하는데 엘리바스처럼 경험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말씀에 근거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께 대한 나의 이해를 계속해서 형성하실 수 있도록 나의 생각과 마음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음성보다 나의 경험을 우선하여 판단하는 일이 없도록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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