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오묘함으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욥기 11:1~20)②
1~12절 소발이 하나님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욥의 발언에 반대의 의견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소발은 먼저 말이 많은 욥을 비난합니다. 말이 많은 것은 성경에서 어리석은 행위, 허물로 간주합니다. 사실 말 많은 욥의 주장은 적절한 한계선을 넘어서서 이에 대해 오히려 반대하거나 질책을 가하게 하는 부정적 효과만을 낳게 합니다. 그리하여 소발은 욥의 말을 가리켜 불경건한 것이라고 단정했습니다.
소발은 하나님의 지혜는 깊숙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과 둔한 생각으로는 알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결국 욥이 현재 당하는 고통은 바로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욥 자신은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소발은 욥이 겪는 고난의 이면에는 비밀스러운 죄악이 있다고 생각한 한편 자신의 논리나 견해로 욥을 설득시키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 욥에게 공박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깊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처럼 전지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셨으므로 고통이 그 정도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측정할 수 없으며, 또한 그의 행사의 이치를 찾아낼 수도 없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측정 도구로써 재어지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발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러한 하나님에 비교해 욥을 허망한 존재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임으로써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욥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소발의 발언 내용이 신학 토론장 혹은 학술 장에서 나온 것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욥이 당한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 그러한 말이 욥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세상의 지혜는 인간의 노력과 끊임없는 연구로 알아낼 수 있으나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인간의 한계 밖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그 무게대로 갚지 않는 것은 죄를 범한 인간이 과거에 축적해 놓은 선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연약함을 깨닫고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13~20절 소발이 전개한 회개의 단계는 내면을 깊이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불안정한 마음을 견고히 하려는 결의가 충분할 때 하나님을 구하려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스로 하나님께 간구하며, 은혜와 긍휼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발은 욥에게 더욱더 낮은 자세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촉구합니다. 다음으로 생활 속에서 버리지 못한 죄가 있다면 자신을 성찰하고 말씀에 비추어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이처럼 소발은 욥이 자신의 논지에 따라서 회개하기만 하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의 행복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지극히 도식적인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 특히 소발의 이와 같은 논리에 대해 긍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인즉 자신은 결백하고 흠이 없기 때문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다만 고통에서 해방되기만을 계속해서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응보적인 정의만을 주장하는 친구들에 의해서 욥은 오히려 또 다른 진리의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욥은 하나님께서 인과응보의 원칙에 따라 행하신다는 친구들의 충고가 너무나 현실성이 없고, 자신의 상황에 대한 적절한 적용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이러한 율법과 저주가 의인에게 꼭 문자적으로만 적용되지 않는 다는 견해를 피력하게 됩니다.
여기본문에서 자연의 일반적인 원칙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행사들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하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의 실체, 즉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우리에게 보인 하나님을 좀더 깊이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아집니다.
★좋은 말은 양약이 되어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어떤 말은 칼날이 되어 사람을 도리어 죽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소발의 공박은 아픈 곳을 더욱 들추어내는 예리한 칼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상대편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야기된 불행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편을 충고하기 이전에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며 이해심을 갖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정말 나를 어렵게 하는 자가 있다면 못 참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완전함이 아니라 회개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주님을 두려워하면서도 또한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구하는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신비로운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상고함으로 주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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