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기 6:1~30)②
1~4절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욥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재의 고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재의 상태를 보아 짐작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욥은 이러한 자신의 두려움을 확실히 나타내기 위하여 전쟁에서 유래된 비유적 표현들을 사용하여 깊은 번민 속에 빠지게 된 원인이 그가 지금까지 사랑하고 섬기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고통을 그에게 가져다주시고 아픈 흔적들로 남겨 놓으셨기 때문이라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5~6절 이어서 욥은 당시의 지혜 철학자들이 사용하였던 두 가지 격언을 사용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과장하여 변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 번째의 격언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엘리바스의 교훈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현재의 의미 없는 삶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욥기 기자는 다소 반어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장래에 대한 희망이나 확신을 상실한 욥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7~13절 욥은 후반부에서 공공연히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절규는 성경의 곡곡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이러한 구절들에는 엘리바스가 제시했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가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욥이 이러한 태도를 취한 것은 그의 오만함이나 방자함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욥에게는 아무 힘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허락에 의하여 사탄으로부터 무자비하게 궁지로 몰렸기 때문에 그가 바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음을 간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욥의 슬픈 탄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붙들어 주지 않는 한 인간은 스스로 고난을 헤쳐 나올 수 없다는 것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14절 욥이 그의 친구들에게서 친절함을 기대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은 인간이 가져야 될 기본 원칙으로서 동정을 언급하였습니다. 이유는 편안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고통과 번민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를 동정하는 것이며,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친구를 동정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버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환난 속에서 진정한 친구와 가변적인 친구와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욥은 그의 친구들에게서 자기의 고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원하였으나 그의 친구들은 사랑이 없어 메말라 바닥이 갈라져 있는 강과 같은 마음의 상태를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성도들이 단지 의무감이나 습관에서 선행을 행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욥의 친구들처럼 사람들을 실족시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욥이 그 어떠한 인간적 동정심과 도움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상태에 처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욥이 처절하게 절망적이고도 외로운 상황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욥이 행한 찬구들과 하나님께 대한 원망은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탄원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친구들의 말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절박한 욥의 심정을 감안할 때 그가 행한 비난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욥의 입장은 옹호될 수도 있을 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고통에 의해 욥의 심령 상태가 딱딱해져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욥이 자기 자신의 난제에 대해서 변론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의(義) 즉 자신의 의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반부 14~23절에서 욥은 친구들의 무정함에 대해서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29절에서 자신의 변론을 끝내지 아니하고 엘리바스의 충고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의를 나태내고 있습니다.
욥은 자기 변론의 차원을 넘어 자신을 드러내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암시적으로 드러내 강조하는 자는 마치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바리새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자를 엄하게 질책하신 적 있으며 24~30절에서의 욥의 그러한 과오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호되게 질타를 당합니다.
여기서 고난의 슬픔에 처한 자를 동정하고 위로하는 것은 신앙 이전에 가져야 될 인간적인 의무라는 것과 위로가 없는 각박한 환경 하에서는 자기주장을 절제해야 한다는 영적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자신의 정당성을 너무 강조하여 주장하다보면 상대를 멸시하는 태도를 갖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쉽다는 사실을 교훈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인격으로 변하여 늘 성령의 지배를 받도록 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물을 공급하는 활력소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욥은 지금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온 몸은 병으로 찌들어 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구들마저 그를 비난 했습니다. 누구나 이런 상태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행동이나 말을 아무렇게나 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죄 중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의연한 태도를 본받아 성도의 생활에 지표로 삼도록 합시다.
우리 생애의 진정한 목표는 부귀도 아니요 재물의 풍부함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그릇된 길로 빠지도록 노력합니다. 빈곤이나 병마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실성을 버리게 하도록 애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우리의 신실성을 지키길 바랍니다. 헛된 것에 관심을 두지 말고 진정 심지가 굳은 백성으로 담대히 살아갑시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자신의 곤고한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갑니다. 그래야 어려운 환난을 벗어 날 수 있다고 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주위에 정말 좋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직한 말이 오갈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친구들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 주지 않도록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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