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마태복음 26:17~35)③[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니라]

꽈벼기 2023. 4. 3. 14:04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35)

 

17~19절은 마지막 만찬 대한 기사이며 20~25절은 예수님의 마지막이 임박하였음을 거듭 환기 시키고 있습니다.

 

유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되자 자기의 선생을 팔아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이것은 유다의 입장에서는 순전히 자기의 계산에 따른 행동이었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수님의 지적에 대해서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대답한 것이나,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부른 것을 볼 때 그는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유다에 비해 유월절 잔치를 예비한 제자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아무런 재산도 없이 그야말로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따랐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순종의 행동을 통해서 그분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26~30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은 두 번 다시 되풀이 될 수 없는 역사적으로 유일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구속 사역의 의미는 후대에게 계속 전달되어야 하므로 십자가의 사역을 상징할 수 있는 예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성찬 예식에 참여하는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과 그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들 때마다 그가 십자가에서 고통 받고 죽으신 것을 깊이 묵상합니다.

 

31~35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취한 행동에 대해 마음을 읽고 예언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강경하게 부인한 것은 충분히 있을 만한 대답이었습니다. 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고민과 괴로움에 동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충동적인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가롯 유다의 태도와 비교해 볼 때 주님을 향한 감정은 비교적 순수했지만 그때 주님의 마음과 생각을 도무지 알지 못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예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명령입니다. 실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세상의 죄를 없애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분의 찢어진 살과 쏟아져 버린 피의 산실입니다. 그 산실을 취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운 삶을 이룰 것입니다.

 

목숨을 바쳐 순교할지언정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상황에 따라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주님을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면 주님도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자만하다가 넘어질 것을 생각하고 우리 자신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내 계산대로 행동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내 계산에 따라 생활하지 않고 미련하더라도 주님을 섬기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성찬식이 형식화되지 않도록 십자가의 고난과 의미를 깊이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일을 기분이나 내 체면 때문에 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고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따르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