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를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2:13~53:12)②
52:13~15에서는 종의 독특한 사역의 ‘네 번째 종의 노래’ 도입부에 해당됩니다. 종이 그 사역의 원수로 얻게 될 고상한 신분을 먼저 기술하고 이어서 종의 사역 내용 때문에 일반 백성과 열방이 놀랄 것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메시야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 하늘로 올라가신 것과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 것과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다’에 대하여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놀람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백성의 놀람이고 다른 하나는 열방의 놀람입니다. 심한 고통으로 외형이 참혹해진 종으로 인한 놀람이고 또 하나는 종의 사역으로 야기된 복음의 확대로 인한 놀람입니다. 영광과 존귀로 나타나실 메시야를 소망했던 이스라엘은 수난의 형태로 오시는 종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과 무관한 상태에 놓여 있던 이방은 메시야의 고난을 통하여 자신들까지 구원의 혜택이 주어짐을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신적 지혜의 산물로서 온 인류를 향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종의 배척이 53:1~3에서 말씀하십니다. 종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므로 사람들이 흠모할 만하지 못하였습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섬기러 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음을 언급합니다.
종은 ‘연한 순’ 같아서 멸망된 다윗 족보를 통해 탄생하며,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패역한 시대 속에서도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속적 성장은 오직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멸시하며 배격합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외면합니다. 이처럼 종은 가장 비참한 지경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종은 이러한 비난을 감수함으로써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합니다.
4~6까지를 살펴보면 종의 고난이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받는 대리적 형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길 잃은 양과 속죄양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의 반역과 어린 양의 대속을 효과적으로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유는 속죄일에 희생 염소를 광야로 떠나보내던 이스라엘에게 매우 적합하다고 보여 집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떠나 방황하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원하여 고통을 감수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7~9까지는 오용된 공권력 앞에서도 침묵하는 종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당하며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과정이 주는 고통을 예견하셨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간적 욕구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결심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해와 모욕을 담당하게 맞이하였습니다. 심지어 오용된 공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 앞에서도 침묵하셨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예레미야의 행동과 대조를 이룹니다. 종은 억울한 대우를 받을 때도 결코 흥분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구속적 사역을 성취하고자 하는 메시야의 헌신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속건 제물로서 죄악을 담당하는 여호와의 종, 그리고 종의 최종적인 모습이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과 부활과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신 것과 마지막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종은 자신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림으로써 제사 제도를 완성하셨고 아울러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이러한 사역을 위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을 증명합니다.
◆또한 구원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수난을 통과한 메시야에게 천상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과 존귀를 부여하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게 된다는 진리의 가장 확고한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대속의 사랑을 생각합니다. 나를 대신하여 찔리고 상하신 주님께 감사와 사랑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고난에 동참하길 원하며 새 생명 주신 것을 감사하며 오늘도 주님이 주신 평화와 치유가 있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55:1~13)②[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어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0) | 2021.08.03 |
---|---|
(이사야 54:1~17)②[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0) | 2021.08.02 |
(이사야 51:17~52:12)②[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0) | 2021.07.31 |
(이사야 51:9~16)②[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0) | 2021.07.30 |
(이사야 50:4~51:8)②[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0) | 2021.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