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역대하 25:1~13)[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꽈벼기 2020. 12. 3. 08:29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역대하 25:1~13)

 

아마샤는 북이스라엘 사람 십만을 용병으로 들여와 그들과 함께 에돔 전을 치르려고 합니다. 이것을 안 한 선지자가 만류하자 용병의 몸값으로 치른 은 일백 달란트를 잃게 될까 봐 아까워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열정이 없고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런 성격의 아마샤는 쉽게 우상 숭배에 빠지고 선지자의 책망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부왕인 요아스를 죽인 신복들을 처리하는 문제에 있어서 만일 아마샤가 여호와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으로 무조건 처형했다면 나라는 더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의 사람을 무고히 죽인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단순히 정치적 보복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율법에 준하여 엄격하게 신복들을 처형했습니다. 감정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백성들을 의롭게 다스려야 합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간적인 계산으로 불신앙의 집단인 북 왕국 에브라임 군대 10만을 용병으로 사 왔습니다. 전쟁이 여호와의 손에 달린 것을 몰랐습니다. 여호와가 싫어하는 자와 손을 잡는 것은 여호와를 무시하는 불신앙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기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아마샤는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며 의지하는 것보다 물질에 더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일을 위하여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할 때 얻는 결과와 영화는 어려움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마샤는 자신의 신앙적 판단 실수로 인하여 이스라엘 용병들을 분노케 하였고 그 결과 유다 성읍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마샤가 인내해야할 부분이었으며 혈기로 맞서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군의 소행은 화가 나는 일이었지만 자기 잘못으로 생긴 일이니 인내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에돔을 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용맹해서가 아니고 군대가 강해서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여호와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힘으로 승리를 한 것인 양 세일 자손의 우상들을 가져다가 자신의 신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불신앙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해 기록된 모세의 율법은 정의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었습니다. 정의가 불의를 막습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정의 실현을 위하여 과감히 외치고 있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말씀이 근거가 되어 실천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실천도 겸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정신은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내 감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원합니다. 때때로 경제적 손실이나 사람들의 뒷말이 염려되어 마음을 흔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돕기도 하시고 패하기도 하시며 생각 이상의 것을 주실 수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만은 금물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다른 무엇이 없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