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시편 39:1~13)[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꽈벼기 2020. 10. 31. 08:25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시편 39:1~13)

 

1~6, 다윗은 혀로 인한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혀에 재갈을 먹이겠다고까지 하였습니다. 한편 선한 말로 자신의 정당성을 변호하고 싶지만 이를 참고 침묵하기에 더욱 고통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신앙적 침묵으로 인해 그 마음이 뜨거워지고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함이 북받쳐 오릅니다. 그렇지만 그는 들끓는 감정을 주위 사람들에게 쏟지 않고 하나님께 아룁니다.

 

다윗은 인생의 한계와 연약함을 깨닫는 간구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인간은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들이라는 인생의 참다운 지혜를 터득하게 됩니다. 인간이 형통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허사일 뿐입니다. 그 형통은 숨 한번 쉬는 것과 같이 없어질 안개와 같이 찰나적입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를 산다고 합니다. 이렇게 산다고 헛된 일에 분주히 돌아다니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잡으려고 하는 것은 그림자 같은 것들이어서 실체가 아닌, 아무것도 아닌 허상일 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고 인생에는 더 소망이 없음을 확신하였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결국 다윗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합니다.

 

7~13,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어서 하나님 외에는 더는 바랄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만이 참되셔서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 주십니다.

 

다윗은 지금 그가 당하고 있는 질병과 고통에 대하여 하소연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를 범한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원인이 되는 죄가 제거되지 아니하는 한, 고통은 사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시련이나 환난이 닥쳐왔을 때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그 시험의 원인이 나의 죄를 범함에 있지 않은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고통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알았기에 이 징계를 거두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간구하고 있는 다윗의 지금 형편은 죄악의 상태입니다. 매우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원수들의 음모가 진행되어 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고통이 주님의 손이 치심으로 인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게 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그의 신념이 깔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심판하신다면 아무도 그 앞에서 구원될 자가 없습니다. 자신이 죄 탓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즉각적이고 자비 없는 심판이 행해지지 않고 자신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징계하시어 죄를 깨닫게 하시며 회개에 이르도록 하심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마지막 12~13절은 결론적인 기도문입니다. 단계적으로 강렬하게 점층 되어 가고 있습니다. ‘기도, 부르짖음, 눈물로 이어지는 점층은 그가 얼마나 간절하게 간구하고 있는지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고 때로는 울부짖고 눈물을 흘리며 깊이 회개하기도 했습니다. 다윗의 회개는 철저하였습니다. 다윗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잠깐의 건강만이라도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절망적이며 불안정한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가 죽기 전에 하나님께 용서를 바라고 있는 것은 비록 건강치 못하지만 죽기 전에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하는 자신을 자기의 열조처럼 객과 거류자, 이국땅에 머무는 이방인의 처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 땅 위에 안착하여 뿌리를 내리지 않고 영원한 고향을 바라는 자신의 심정을 피력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나그네임을 내세워 나그네를 선대 하라고 하신 하나님께 특별히 자신의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는 듯합니다.

 

이 땅에 고난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과 환경 모두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고난 중에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인들처럼 고난의 중압감에 누려 불평 불만할 것이 아니라 더욱 선을 행하기에 힘쓰며, 소망 중에 다가올 구원을 기대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그 고난은 도리어 우리의 신앙 성숙을 위한 중요한 계시가 될 것입니다.

 

연약하기에 주님과 그의 나라를 소망합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알기에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나라에 소망을 두길 원하며 고통에 대하여 거두어 주실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간구하길 원합니다. 사랑으로 징계하시고 나를 고치실 때 그것을 받으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