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고린도전서 14:20~40)[예배의 질서]

꽈벼기 2020. 6. 23. 07:48

[예배의 질서]

(고린도전서 14:20~40)

 

말씀, 예언, 방언, 통역 등의 은사들이 풍성하여 누구든지 성령의 은사를 받은 대로 은사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은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바울은 은사 사용에 관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이들이 방언한다면 한 사람씩 차례로 하되 반드시 통역하는 자가 따로 있어서 회중이 같이 듣고 유익을 얻어야 합니다. 만약에 통역 없이 두세 사람이 마구 떠들어 댄다면 오히려 회중을 혼란케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통역이 없는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편이 낫습니다. 예언의 은사 역시 질서에 따라 활용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은사는 질서와 조화라는 지침을 중심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11장에서도 언급하였거니와 고린도 교회가 직면한 문제 중의 하나는 여자들이 교회에서 기도하고 예언하되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의 여인들은 가정을 벗어날 때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것이 일상적인 관례였으나, 믿음의 권속에 속하게 된 여인 중 일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유한 자유를 남용하여 머리에 수건을 두르지 않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제 본문에 거론된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몇몇 여성이 교회를 소란케 하는 문제입니다. 여자 중에 어떤 이들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소란을 일으켜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바울의 사도적인 계시에 도전하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여성은 기독교 진리에서 벗어난 의미 없는 질문으로 예배를 중단시키고 물의를 빚으므로 그들이 얻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용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자들에게 침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요구가 준엄한 명령형으로 되어있는 것에 주목한다면 당시 고린도 교회의 여자들이 공적 모임에서 얼마나 말을 많이 했으며, 행동을 함부로 했는가를 가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자유와 권리는 때때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자제되고 양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은사 문제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먼저 바울은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타 교회보다 훨씬 월등하다는 고린도 교회의 우월 의식을 책망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교만을 과감히 내버리고 오직 사랑 안에서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함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만방에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 즉 예언하든지 방언을 하든지 기타 어떤 은사를 사용하든지 질서를 지켜가며, 적당히 할 것이며,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해야 할 것이니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가 베푼 교훈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신령하게 교통하는 중에 받은 것임을 확신 가운데 강조하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한 성령을 믿는다면 자기의 교훈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지켜 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사인 예언의 본질과 그 유익함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예언의 은사는 단순한 어휘로서 그치는 개념적인 용어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것의 바른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은사임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에게 남은 것은 이 예언의 의미를 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언의 정신과 그 내용을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어떤 태도로 드리는지 돌아봅니다. 화평의 하나님이시기에 사랑의 원칙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할 줄 압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다른 지체들과 하나 되어 찬양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