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요한계시록 10:1~11)
1~7절,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힘 센 다른 천사’의 신분, ‘작은 두루마리’가 의미하는 것, 그리고 그 ‘힘센 천사의 맹세‘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1절에 ‘힘 센 다른 천사’가 내려오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는데, 그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으며 그 발은 불기둥 같습니다. 이 천사는 ‘구름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위엄과 영광스러운 행차를 상징하며,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재앙들은 약속에 따라서 시행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그 얼굴이 해 같고’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천사의 얼굴에 반영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발은 불기둥 같으며’라는 것은 이 사자가 지닌 천상의 위엄을 나타냅니다.
2절에는 천사가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작은 두루마리는 이란 5:1의 두루마리는 인간의 역사에서의 하나님의 구속적이고 사법적인 목적을 밝혀주는 계시를 담고 있다면, 본문 2절의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단편적인 목적을 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한편, 여기에 ‘작은 두루마리를 펴 놓인’ 것은 그 두루마리 안에 담겨 있는 예언의 말씀이 계시되고 성취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역시 5:1의 ‘인봉한’ 두루마리와는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또한, 작은 두루마리에 포함된 계시의 내용은 장차 일어날 하나님의 심판을 담고 있는 11장 이후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더 나아가 2, 3절에서는 힘센 다른 천사가 작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나타나 오른발로 바다를 밟고 왼발로는 땅을 밟고 서서 사자와 같이 큰 소리로 외칩니다. 여기에서 이 천사가 작은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나타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로서 세상에 예언의 말씀을 전할 임무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오른발로 바다를, 왼발로 땅을 밟고 선 것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 전 세계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5, 6절에서 이 힘 센 다른 천사는 오른손을 들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 맹세합니다. 여기에서 ‘오른손을 들고’는 강한 맹세를 나타내며, 그 맹세는 창조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이 맹세는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천체의 세계),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지상의 만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바다속 모든 것들)들에 미칩니다.
한마디로 지체하지 않습니다. ‘지체하지 아니하리라’는 천사의 맹세는 7절에 나온 ‘일곱째 나팔이 울리면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지리라’는 맹세와 짝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은 곧 일곱째 나팔로 연결되는 일곱 대접의 심판을 일컫습니다. 즉 일곱째 나팔이 울리면 마지막 일곱 대접의 재앙이 이 땅 위에 임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향한 최종적 모습이 계시됩니다.
따라서 이 힘센 천사의 맹세는 천사가 일곱째 나팔을 불면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비밀이 성취될 것을 강조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비밀은 말세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경륜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일곱째 나팔로 시작되는 일곱 대접의 심판을 통해 본격화됩니다. 이 심판 속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비밀‘이란 감추어져 있거나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계시한 하나님의 목적, 즉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속 목적을 가리키며, 이는 악에 대한 심판과 그의 백성들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포함합니다.
8~11절, 요한에게 작은 두루마리를 먹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요한은 천사의 말에 순종하여 그 책을 먹어버렸습니다. 그것은 그의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지만, 배에서는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 요한은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객관적 진리를 주관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읽고 듣고 상고하여 자기의 삶에 흡수하는 것, 다시 말하면 말씀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먹으면 말씀이 곧 삶 전체에 파고들며, 우리의 사상과 행동을 주관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우리에게 요청되는 ‘말씀을 먹으라’는 명령입니다.
10절에 명령대로 그 두루마리를 먹었을 때 그 두루마리의 맛은 입에는 달았으나 배에서는 썼습니다. ‘입에 달다’는 것은 사도 요한이 기쁨으로 그 말씀과 주어진 사명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음으로 사도 요한이 그 메시지의 본질을 깨달았을 때 그 내용이 주는 슬픔은 그를 쓰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도로서 누리며 확신하는 것은 큰 기쁨이지만, 그 내용이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담고 있으므로 전파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썼다는 의미입니다.
11절에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은 사도 요한의 말씀 전과 임무를 강조한 것으로 작은 두루마리의 환상을 통해서 사도 요한의 예언자적 소명을 확인 또는 환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요한에게 부여한 예언자적 소명은 본 장에서 처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1:1절에서 밝혀졌습니다. 장차 이루어질 사건들과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역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성경을 가지고 대화를 나눌 때 성경 가운데 체험적으로 발견한 사실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단순히 성경에 대한 지식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지식은 체험적일 때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체험적인 지식과 비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험적인 지식이 없는 성도는 외형적으로 성경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신앙생활 자체에서는 무기력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전념하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해 늘 미안하네요. 이기적인 욕망과 세상의 안목들이 녹게 하시고 믿음을 가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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