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편 130:1~8)~(시편 131:1~3)
130:1~2, 시인은 먼저 자신을 깊은 물 가운데서 발버둥 치고 있는 상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깊은 데서 하나님께 절실하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현재 심각한 절망과 낙담에 빠져서 고통스러운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 시인의 심정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던 요나와도 같습니다.
그는 큰 절망 가운데서 약속의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응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환난 중에서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지만,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그에게 부르짖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더욱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은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3~4절,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하게 부르짖던 시인은 이제 모든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율법의 요구대로 우리를 대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심문한다면 세상 누구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 앞에서 용서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파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가장 거룩한 자라 할지라도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어서 인간은 유일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존해야 합니다. 시인은 인간의 본질을 상고하면서 비관론을 전개한 후에 곧이어서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라고 덧붙입니다. 이것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서만 죄사함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줍니다.
인간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자력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악됨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5~6절,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이 있는 시인은 이제 그의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그분의 말씀만을 바란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내 영혼’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소망은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느끼는 믿음과 확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시인이 기다리고 있는 ‘말씀’은 구원의 연약으로서 비록 세상의 극심한 고통이 우리를 억누른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고통을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면서 인내하겠다는 결의를 보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의 근거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심정을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욱 강렬하다고 6절에서 말합니다. 더구나 ‘기다리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기다리는 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밤을 교대로 지키는 파수꾼들이 아침이 밝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모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7~8절,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구원에 관한 확신을 모본으로 하여 온 이스라엘이 같은 마음을 갖도록 권면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환난에서 구원받을 방법이 전혀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는 유일한 소망은 오직 여호와 안에만 있음을 확신합니다. 시인은 여러 가지 말로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데, 첫째는 ‘인자하심’으로, 둘째는 ‘풍성한 속량’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시기에 이스라엘을 속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스라엘의 물질적, 정치적 속량을 언급하지 않았고 오직 죄악에서 속량하심을 강조하였습니다.
131:1절, 다윗은 먼저 자신이 인간적 야망이나 교만에 이끌리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에 겸허한 마음으로 복종했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1절은 ‘높다’는 의미를 지닌 4개의 병행 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만, 눈이 오만하지 않고, 큰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 거만하게 굴지 않았고 오직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뜻만을 준행하려고 노력했음을 나타냅니다.
2~3절, 자신을 어미의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젖뗀 아이는 성가시게 울면서 젖을 달라고 보채지 않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사실만으로 만족을 느낍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따라 온전한 만족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겸손한 믿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섬세한 보살핌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130편에서와 같이 자신이 깨닫고 결심한 교훈을 이스라엘이 배우라고 촉구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에만 관심을 두는 이기주의에 함몰되지 않았고 모든 백성에게로 시야를 확장합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신앙의 핵심은 외부적 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 곧 마음의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평소에 높은 것을 탐하지 않고, 호기심에 팔리지 않으며, 아이와 같이 고요한 마음을 지닌 것처럼 바람직한 일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깨끗이 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심을 알고 있습니다. 내 마음과 생각 속에 소망을 주님께 두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식이 더욱더 자라길 바라며,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마음 자세로 일에 임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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