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형은 오훌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꽈벼기 2019. 8. 17. 08:18

[형은 오훌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에스겔 23:1~21)

 

1~4, 신탁의 형식을 빌려서 새로운 내용이 전제되고 있는 본 단락은 이스라엘의 유년기의 죄악을 행음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 2절은 두 여인의 등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 4절은 두 여인에 대한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어머니는 이스라엘이 연합된 하나의 국가였음을 밝히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연합 국가의 분열은 솔로몬의 죽음 이후에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북방 왕국은 사마리아로 통칭하였고, 남방 왕국은 예루살렘으로 통칭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본 단락에서는 오홀라를 사마리아로 오홀리바를 예루살렘으로 그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오홀라오홀리바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동기입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의 총체적인 범죄의 근원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여기서 오홀라의 문자적인 의미는 그녀의 장막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장막이 아니고 자기가 제 마음대로 만든 장막입니다. 반면에 오홀리바의 문자적인 의미는 나의 장막이 그녀에게 있다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 단락은 이 두 장소가 모두 이스라엘 죄악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5~10, 사마리아의 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정치적인 역사를 배경에 깔면서 그들의 행위에 대한 신학적이며 신앙적인 특징을 풍유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5~8절은 사마리아의 범죄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5~8절은 이스라엘 죄악의 실상으로 이스라엘의 죄는 근본적으로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의 막강한 군사력과 정치력에 현혹되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 힘에 의한 지배권을 갖는 세상의 원리에 함몰되어 진정한 역사의 주관자를 외면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의지하던 앗수르로부터 심한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자신들이 의지하고 있던 세상 세력이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세상 나라도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 속해 있음을 제시해 줍니다. 하나님은 열방까지도 도구로 사용하시어 자기 백성들의 죄악을 처벌하시는 분이십니다.

 

11~21, 예루살렘의 죄악을 각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11~13절은 앗수르의 범죄를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4~21절은 예루살렘에 대한 징계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범죄는 사마리아의 범죄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예루살렘은 사마리아의 범죄와 심판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앗수르와 바벨론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범죄를 저질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에스겔은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범죄의 수치스러운 상태에서도 사마리아의 범죄보다 더 심각하게 묘사합니다.

 

신앙의 선조와 이웃의 실패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웁시다. 그들의 죄악에 동조하거나 답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실족을 예방하기 위해서 그리합시다. 과거의 잘못된 습성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버리기를 원합니다. 구원의 날이 날로 가까운 고로, 이전의 누구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은 자로서 오늘 우리의 삶은 어제의 선조들보다, 과거의 역사보다 더 승한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외모를 자랑하며 다른 사람의 눈을 사로잡으려고 하지는 않은지 생각합니다. 관계에서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매력으로 삼으며, 떳떳하고 당당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