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갚는 일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히브리서 10:26~39)②
배교에 대한 경고와 아울려 죄의 정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배교는 하나님을 거스른 죄악에 해당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배척하며 모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음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한 그리스도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동시에, 다른 인간의 일반적 죽음과 같게 간주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모독한다는 뜻이지만 성령의 사역을 훼방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죄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고 성경은 누차 강조합니다.
배교한 자들에게는 다시 속죄할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게 됩니다. 기독교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도 계속 고의적인 죄를 범하는 자는 다시 죄사함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뿐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라는 구약성경 신명기 32:35, 36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죄를 범한다면 공의의 원칙대로 처벌하심을 강조합니다. 한 번쯤이야 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죄를 범하며 불꽃 같은 하나님의 눈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지 양심에 묻고 있습니다.
배교에 관한 언급은 단순한 경고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고난에 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기 위함입니다. 신앙적으로 퇴보하여 멸망할 가능성과 전진하여 구원에 이를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떠한 삶의 자세를 요구합니까?
강인한 인내가 필요함을 말씀합니다. 앞으로 닥칠 ‘미래의 불확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인내였습니다. 극심한 생의 폭풍우 속에서 인내가 없다면 틀림없이 난파를 당하게 되듯, 저자는 독자들을 향하여 인내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재림의 소망을 기대하며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재림의 지연은 좌절감만을 낳았을 것입니다. 이러할 때 저자는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박국은 B. C. 7세기경 불신앙과 불순종이 범람하던 사회에 실망한 나머지 하나님께 유다의 불의에 대해 탄원했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박국의 이러한 정황은 1세기의 극심한 어려움에 부닥친 그리스도인들에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신앙을 기억게 했습니다.
믿음을 소유한 자는 배교나 불신앙으로 인해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고 생명에 이르는 승리를 얻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역경은 결코 해로운 적이 아니라 아주 귀중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시대가 너무나 악하기에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더욱더 인내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 인내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따라 성령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이 인내를 소유하지 못하면 대적 마귀가 우리 주위에 수없이 많이 숨겨 놓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과 소망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인내를 나타낼 때 우리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더욱더 예수님을 붙들며 순결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죄를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을 주셔서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길 원합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부족합니다.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닫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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