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꽈벼기 2019. 6. 14. 07:33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11~22)

 

여기서 구약시대 제사 제도의 참된 실체인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에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비록 구약시대 제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에 미흡하였지만,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영원한 효력이 지속하는 제사이며 유언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유언자의 죽음이 필연적이듯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연적임을 주장합니다.

 

옛 언약의 제한된 효력으로 인한 좌절로부터 장래 좋은 일에 관한 언급으로 주제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짐승의 피가 아닌 바로 자신의 피를 흘리시고 하늘의 더 크고 온전한 장막, 곧 영원한 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새 언약과 그리스도 자신을 제물로 하여 드려진 이 제사는 어떤 영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 효력은 우리의 구속을 이루고,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의 섬김을 거룩게 하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에 속한 대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을 이루시며 드린 제사의 특징은 희생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전 존재를 온전히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희생입니다. 예수님의 제물은 자기 자신입니다. 예수님의 제물은 사랑의 소산으로 자발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의지적으로 자기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 일어난 거룩한 자기희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사는 흠 없는 자기희생이었습니다하나님은 인간에게 인간성에 속하는 모든 것의 완전한 헌신과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악함 때문에 그 요구를 만족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완전하고 흠 없는 순종과 섬김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흠 없는 자기희생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리자입니다.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을 통한 흠 없는 순종 때문에 인류에게 구원과 용서와 생명과 소망을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나름대로 드려야 하는 희생을 우리를 위해 완전히 드리신 것입니다.

 

제사의 위대성은 첫 언약에 속한 예법들이 약한 것에 비교해, 새 언약의 예법들은 너무나 위대함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새 언약에 의한 제사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이루어진 제사입니다. 그리고 죄를 효과적으로 처리합니다. 새 언약에 따른 대속의 희생은 짐승으로 치른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생명으로 치러졌으므로 위대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완성하셨으므로 위대합니다.

 

새 언약을 위한 그리스도 죽음의 필연성으로 새 언약을 위해 왜 그리스도의 죽음이 필요한 것일까? 왜 죽어야만 했는가?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그 효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영원한 기업을 언급하면서 이제 은혜로운 유언자와 그 유언으로 유산을 상속받을 자, 그리고 유언자가 죽을 때 상속될 유산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필연성을 법률적으로 예증하고 있는 셈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은혜로우신 유언자입니다. 영원한 기업을 주실 분은 은혜에 굶주려 있는 비참한 사람들에게 자기의 사랑을 실행하는 중보자이십니다. 은혜로우신 유언자 예수 그리스도는 상속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감사가 넘치는 상속인입니다. 영원한 기업을 입을 자,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하여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을 자리로 초대받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며 이를 통하여 영혼은 부유하게 됩니다.

 

주목할 다음은 풍족한 유산입니다. 이 유산은 약속된 영원한 기업입니다. 이때 약속된은 이 유산의 확실성을, ‘영원한은 이 유산의 성질을, ‘기업은 이 유산의 내용을 각각 나타냅니다. 유산은 약속된 것이며, 영원하며, 백성을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18~22절에서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죄인 된 인간이 정결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시킵니다. 구약 시대의 언약은 피로써 확증되었습니다. 회중에 피를 뿌림으로 그들은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새 언약의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이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성소는 피로서 거룩해졌습니다. 처음 성소는 피 뿌림에 의해 정결해져야 했고, 이에 의해서만 그 모든 기구가 깨끗해졌습니다. 이것을 영적 생명의 유형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 제물로서의 죽음, 즉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없다면 죄 사함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양심은 완전히 깨끗함을 얻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은 그의 피로써 죄 사함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주님의 피로 우리의 행실은 깨끗해졌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주님이 이루신 일을 감사하고 주님께서 주신 자유를 기뻐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일들을 생각합니다. 내 삶 속에서 아버지께 영광 돌리지 못했던 부분을 깨달아 알기 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