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와서 애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 칼로 칠 자는 칼로 칠 것이라]
(예레미야 43:1~13)
1~7절, 요하난과 그 일행들이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며, 예레미야와 바룩을 이끌고 애굽으로 도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3절은 전반부로 요하난과 일행들의 하나님 경고에 대한 거부를 언급하고 있고, 4~7절은 후반부로 애굽으로의 도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끝내 거부하고 결국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대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요하난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모든 백성을 예레미야의 신실함에 도전하며 반발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한 것은 신뢰할 수 없는 거짓이라고 주장했으며, 그러한 경고가 나오게 된 것은 예레미야의 서기관인 바록이 예레미야를 부추겨서 이전의 그다랴를 죽인 자들을 바벨론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죽게 하거나 포로로 잡혀가게 하려고 꾸민 음모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룩은 느부사라단이 바벨론으로 가자고 권하였을 때, 조국과 백성들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예레미야와 함께 폐허된 유다 땅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바룩을 비난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애굽행을 변호하고 합리화하려는 태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레미야의 선언을 끝내 거부함으로 미스바로 돌아오지 않고 게룻김함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예레미야와 바룩까지도 애굽에 가도록 강요하였으며, 모두 애굽으로 이동하여 북쪽에 위치한 요새에 해당하는 다바네스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끝까지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반역하는 태도는 이들이 언약 백성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바로 보여줍니다.
8~13절, 요하난 일행들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거부와 애굽으로의 도주 이후 주어진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재앙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일련의 상징적 행위를 지시함으로써 바벨론 군대가 애굽에 이르러 유다 백성들을 죽일 뿐만 아니라 애굽이 섬기고 있는 애굽 신들을 모두 깨뜨리게 됨을 선포합니다.
애굽의 심판이 지니는 긴장고조는 유다의 돌이킬 수 없는 심판에 대해 애굽의 심판을 빌어 강조합니다. 애굽에 대한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전우주적 주권을 강조하고 있고, 애굽의 죄악성을 통하여 이후 모든 열방의 심판을 암시함과 아울러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 공동체를 기대하게 합니다.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한 국가의 죄악으로 인한 멸망의 선포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 등장하게 될 그리고 에스겔서에서 좀 더 분명하게 확대될, 하나님의 새 언약 공동체를 언급하기 위한 하나의 전환적 의도를 지나고 있습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거부하고 애굽으로 내려간 행위가 얼마나 잘못된 판단이었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어기고 애굽으로 내려간 자들만 멸망한 것이 아니라, 애굽 전체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끌려간 예레미야에게 돌들을 모은 다음에 바로의 궁전 입구의 큰 뜰의 덮고 있는 벽돌아래 진흙으로 묻도록 지시했습니다.
당시 바로의 주요 거주지는 애굽의 남쪽에 위치한 엘레판틴이었는데, 여기서 예레미야가 언급한 ‘궁전’은 아마 다바네스 성에 왔을 때 바로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던 정부 건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행위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을 애굽에 내려오도록 허락하시고 애굽 왕궁 위에 화려한 장막을 치게 되며 죽음, 포로, 칼의 그림자들이 애굽 전역으로 뒤덮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느부갓네살 왕은 애굽의 성전들을 불태워 신상들을 노획하고 마치 목자가 몸에 옷을 두르는 것과 같이 자신의 몸에 두르고 애굽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언은 실제로 실현되었습니다. B, C568~566년 사이에 느부갓네살 왕은 실제로 애굽을 침공하였고 이때에 애굽으로 내려갔던 유다의 남은 자들은 대부분 생명을 빼앗겼을 것입니다.
◆요하난과 그 추종자들의 성급한 애굽행은 어느 한 가지도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들도 종종 위험에 직면해서 그들과 유사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 그럴듯해 보이고, 안정을 약속해주는 듯한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에 역행하는 파멸의 길입니다. 그러나 당장은 인간의 지혜에 반하는 듯하나 끝내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일은 말씀에 순종하길 원하는 것이라 봅니다. 내 속에 많은 계획과 생각들이 있지만,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기로 결단하길 원하며 나를 향한 주의 뜻이 내 안에 완전히 세워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