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로마서 15:1~13)
신앙 공동체의 하나 됨. 세상에서는 비정한 약육강식의 논리만 통용될 뿐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공동체,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는 강자가 약자의 짐을 대신 져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우리에게는 언제나 진실로 하나가 되도록 애써야 할 신성한 의무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본 단락에서 바울은 참된 형제애를 바탕에 둔 신앙 공동체의 일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개인으로서의 ‘나’를 위해서도 기록되었지만, 공동체로서의 ‘우리’를 위해서도 기록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우리’로서의 희망을 공유한 형제들이 모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 삶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삶입니다.
선이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윤리적 관계를 강조한 말이고, 덕이라는 말은 인간과의 윤리적 관계에 더욱 비중을 둔 말인데 바울은 이 말들을 성도가 자신보다 이웃을 기쁘게 하되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함을 암시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교회 공동체의 일치를 강조한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일치의 방법은 ‘서로의 약점을 담당해 주라’는 것과 ‘서로 받으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방법들은 하나 됨의 동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능력이며 동시에 의무입니다.
바울은 본문 첫 절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마땅히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때 ‘마땅히’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빚을 지고 있다’라는 뜻으로 교회에서의 강한 자의 의무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또한 7절에 기록된 ‘서로 받으라’는 말은 ‘서로 인격적으로 대등한 입장에서 남을 존중하며 영접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신앙 공동체가 일치된 결과 성도들은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신앙 공동체의 일치의 결과이며 목적인 셈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칭의의 목적이며 우리의 성화의 목적이고 또한 선택의 목적이며 동시에 신앙 공동체에서 덕스러운 일치를 이루는 목적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여기서 성도 각자의 개성이 지니는 원심력은 모든 것을 포용하시되 정의와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오직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신 주님의 구심력인 통제 속에서 성도 개인의 삶뿐 아니라 신앙 공동체 전체의 삶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참된 형제애를 가진 신자는 첫째로, 믿음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둘째로, 자기 이웃의 유익과 덕을 도모해야 합니다. 셋째로, 그리스도를 따라 서로를 향하여 같은 생각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로, 형편이 어떠하든 같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받아들여야합니다.
신자들에게 요구된 네 가지 할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그리스도의 모범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시편 69:19 말씀처럼 비록 자신이 모욕당하는 일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우선하셨습니다. 둘째, 성경의 권면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인내와 위로를 주며 소망을 갖게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속성 때문입니다. 그분은 연약한 자들을 도우시는 인내의 하나님이며 교회에서 신자들이 한마음으로 참 형제애를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넷째,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같이 구원하는 것 즉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구원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들은 첫째로, 덕을 세우게 됩니다. 이는 성도들로 하여금 지혜와 사랑, 은혜와 거룩에 이르도록 믿음의 성장을 촉진케 함으로써 결국 교회에 유익이 되게 합니다. 둘째로, 교회의 화합입니다. 신자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안녕에 관심이 있을 때 교회는 자연히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찬양입니다. 사랑과 화합이 가득 찰 때 교회는 아무런 잡음이 없는 온전한 찬양, 온전한 예배를 올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득 넘치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교회 안에서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된 형제애를 실천할 때 소망의 원천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본문 중의 9~12절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역을 점진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9절은 시편 18:49 혹은 사무엘하 22:50의 내용을 인용, ‘다윗은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특히 유대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바울이 이방인 중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 사실을 비유적으로 말합니다.
10절은 신명기 32:43의 인용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더불어’ 기뻐한다. 이 구절은 이방인들의 지위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참할 수 있을 만큼’ 높아진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11절은 시편 117:1의 인용입니다. 모든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는 이방인들이 이제는 유대 전통의 간섭을 받지 않고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주를 찬양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교회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예배드리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합니다.
12절은 이사야 11:1절의 인용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통치하시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소망을’ 가집니다. 본 절은 오늘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그분을 의지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한편 바울은 여기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는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함으로써 외형적, 개체적 교회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포함하는 전교회의 일치를 간접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빈부, 교육 정도 등 그 어떤 기준으로도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소망은 희미한 동경이 아니라 히브리서 6:19, 20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견고하게 뿌리를 내린 기대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의 하나님’이란 표현의 의미는 ‘소망의 원천이 되시며,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소망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소망의 대상은 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난 싹에 계시되어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 즉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나 보인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소망에 넘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그리스도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소망의 삶을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상의 것을 바라거나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있는 영원한 것을 기뻐하며 대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에 의한 소망 때문에 성도들은 모든 것을 인내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어 격려하고 강인한 인내를 갖게 합니다.
특별히 바울이 본문의 4절과 13절에서 소망을 강조한 것은 그것이 관용의 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관용의 덕을 가지려면 인내심이 깊어야 하며, 인내심이 깊어지려면 소망이 확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한 형제에 대하여 너그러울 수 있는 것은, 그에게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질 소망이 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모든 인류를 포함한 의와 화평과 성령에 의한 환희의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소망이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고통을 짊어지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우리는 이웃들을 기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단순히 개인적인 일에 국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훈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은 우리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기쁘게 하는 일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인내와 사랑으로 믿음의 지체들을 대하길 원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양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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