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꽈벼기 2018. 9. 29. 08:14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1~12)

 

1절에서 두 종류의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이 연약한 자와 그들을 받을 의무가 있는 믿음이 강한 자들이 있습니다.

2~4절은 음식물에 대한 금기 사항입니다. 바울 당시에 흔히 있던 일입니다. 유대적 전통과 생명 있는 것을 꺼린다는 당시의 통념, 더 나아가 금욕의 열정에서 음식을 절제하는 자 등이 있었는데, 이런 경향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조하는 자와 동조하지 않는 두 부류의 불화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은 4절에서 종과 주인 사이에 제삼자가 개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월권임을 예로 들어 그것은 성도 자신과 하나님 간의 직접적인 문제이지 타인의 의견을 강요할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5~6절은 어떤 날에 대한 특별한 인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계 공통의 일인 이 일이 여기서는 특히 종교적 의무와 관련되어 언급합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언급된 여러 축제일과 절기들을, 이방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풍습에 의한 길일과 흉일에 대한 관습을 갖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복음이란 관점에서 극복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이견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7~12, 남을 판단하지 말아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이유 중 하나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주로서 어느 날 그의 심판대에서 그의 종들이 행한 바를 돌이켜 일대일로 평가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개개인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성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몫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란 일반적으로 아직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모르거나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믿음이 연약한 자란 무엇을 먹으며 언제 예배드려야 할 것인지에 관해서 율법적 사항들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고 느끼는 성숙치 못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율법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참 자유와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강한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야 할 너희로서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교회에는 영적 진리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믿음이 강한 자입니다.

 

두 종류의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나 중심의 생활과 하나님 중심의 생활, 본문에는 성도가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삼은 두 가지 축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그 두 축은 바로 자기 자신과 하나님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든 강한 자든 누구나 이 두 가지 축 중 하나에 속하여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데는 몇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신 것처럼 숨은 동기를 품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성도들을 경시하기 쉬우며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은 자신의 기준으로 이웃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판단치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이 약한 신자들은 이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계속 살아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각자가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각자의 생각과 능력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법칙은 방종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책임 있는 신앙의 자유가 개인에게 철저히 주어졌음을 언명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사회 속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의 삶을 전폭적으로 바쳐서 주만을 위해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자니 먹는 걱정, 입는 걱정 속에서 살아갈 때 부딪치는 인간관계 걱정 등 우리들의 고민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우리가 하는 그 걱정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모든 삶 속에서 만나는 구체적인 사건들에 대한 염려조차도 주께 의탁함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나는 나와 의견이 다른 형제를 대할 때 그와 하나님 관계를 무시하지는 않는지 생각합니다. 다른 의견도 용납하는 여유를 주시기 원합니다. 비판의 마음이 생길 때마다 부활과 심판의 주님을 생각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