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꽈벼기 2018. 9. 2. 07:27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18~32)

 

18~23, 복음의 진리에 대한 해석에 앞서 인간이 왜 구원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에 빠진 자신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입니다. 바울은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관찰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법안에 살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방인, 즉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실존을 표현하기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하나님께 진노를 사고 있는지,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건에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음에도 하나님의 의를 등지고 자연적인 충동대로 불신앙의 길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불경건과 불의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거니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진노는 부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인간이 결코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역설합니다. 피조물 된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변명할 수 없는 근본 이유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고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도 영의 요소를 주셨기 때문에 인간 속에는 충분히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본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을 보아서도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속성, 즉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이나 신성과 같은 것이 인간의 이성으로 감지되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인간들이 자연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으니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변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도덕적인 타락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불경건과 불의를 적나라하게 고발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사는 본질적인 죄책을 느끼게 하며 반성하고 회개하도록 하는 선교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이방인의 죄악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음에도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우상숭배는 창조주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피조물에 돌리는 종교적 행위로서 창조 질서의 파괴를 초래하는 것으로 인간 최대의 죄악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이긴 하였으나 이방인의 사고방식이나 생활 태도에 적응하거나 이교주의와 적절히 혼합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원래 하나님 없는 백성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의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가장 큰 잘못은 우상숭배하며 의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을 바꾸는 것이며, 영원을 일시적인 것과 대치해 버리는 것으로 가장 큰 죄악입니다. 그 결과로 온갖 악덕들이 생겨났고 급기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24~32, 거짓된 우상숭배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예배를 저버린 데 대한 심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그들을 그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어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사는 본문에서 이방인에 대하여 거듭 반복되고 있는 표현인데 한편, 이 말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은 영적 타락에 이어 도덕적 타락에 관하여 소상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건이 무너지면서 인간은 자연적으로 윤리적인 타락으로 치닫게 되었으니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은 동물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도덕적 타락에 빠지게 되며 이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자체가 이미 영원한 심판의 선고입니다.

 

바울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상황을 묘사하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된 근원적인 이유를 진술한 다음 먼저 성관계의 타락을 지적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무서운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방탕한 동성애 행위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 당시 로마 사회에 만연한 죄악상을 반영합니다.

 

또한, 바울은 인간관계에서의 도덕적 타락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으니 마땅히 서로 사랑하고 의를 행해야 하나 저들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 두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결과 합당치 못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 죄의 목록은 28~31절까지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비정상적인 관계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와의 관계도 변질시켜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상황으로 이끌고 간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32)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을 죄악 가운데 그대로 내어버려 두시는 유기의 형벌로 나타났으며 이는 현재 임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심판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죄악된 인간의 실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절망 상황은 긴급한 구원의 필요성을 제공해 줍니다. 바울은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도록 멸망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타락상을 철저히 해부함으로써 초월적인 구원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인간의 절박한 상황을 강력히 도출시켰습니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의 터전, 즉 우리가 존재하는 삶의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실로 우리는 타락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자기의 이익만을 위해서 노력하며 육신의 일락만을 좇는 그릇된 역사에 처해 있습니다. 혹 우리는 형식적이며 아무런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입니다. 세상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는 시대일수록 성도들은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따르며, 악한 세력을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전투적인 신앙인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세상에 가득한 온갖 죄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선 나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원하며, 온갖 죄악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구원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니 감합니다. 언제나 주를 떠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