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꽈벼기 2017. 7. 10. 07:47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갈라디아서 4:21~31)

 

본문은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구약시대의 역사로부터 끌어낸 비유입니다. 율법도 복음도 인간의 처지에서 보면 구원의 길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하나님의 근본 취지 또는, 결과론적 측면에서 보면 율법은 인간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행동을 그 조건으로 요구하여 결국 모든 사람에게 죄를 시인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복음은 인간 자체를 자유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다른 것임을 쉽게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본문의 비유는 율법과 복음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습니다. 이 비유는 지금까지 바울이 거론한 주요 논점, 곧 율법 원리와 믿음 원리의 근본적 대립 및 율법 아래서의 삶은 속박이지만, 믿음 안에서의 삶은 자유이며,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의 결과라는 사실을 확연하게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비유를 도입한 동기는 그와 같은 사실뿐만 아니라 갈라디아 교인들의 잘못된 이해를 교정하기 위한 것도 포함됩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은 유대교 출신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인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두 아내 사라와 하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비유를 소개함으로써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을 지키며 그 아래 종노릇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며, 도리어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어리석은 일임을 깨우쳐 주고자 했습니다. 결국, 이 비유는 율법에 따라 살려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시 그리스도께 대한 신실한 믿음의 삶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사도 바울의 최종적인 인격적 호소라 하겠습니다.

 

하갈에서 난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과 사라에게서 난 아브라함의 적자 이삭은 각각 하나님의 두 언약, 즉 율법과 복음의 비유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 이스마엘과 그 어미 하갈은 본래 종의 신분이었고, 아브라함이 노쇠한 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출생한 이삭과 그 어미 사라는 자유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율법과 복음은 종과 주인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 성립됩니다. 하갈이 사라의 종이었듯이 율법은 복음을 위한 존재입니다.

 

바울은 이 비유를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적용해 말하기를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된 것은 전혀 우리의 의지나 행위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언약과 성령의 사역 때문에 주어졌습니다. 비록 우리는 그 은혜를 값없이 받았으나 하나님은 엄청난 사역을 수행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살아간다면 약속된 유업이 더 확실해지며 또한, 성령의 인도 하심을 받게 됩니다.

 

주님만을 섬기되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하길 원합니다. 나의 입술과 마음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찬양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