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언약궤의 운반과 웃사의 죽음]

꽈벼기 2016. 7. 22. 07:27

[언약궤의 운반과 웃사의 죽음]

(사무엘하 6:1~11)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정치적 권력을 확립한 다윗은 이제 본격적으로 신앙적 과제를 해결하려 듭니다. 그것은 곧 7, 80년 동안이나 기럇아림에 방치되어 있었던 언약궤를 수도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는 일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이를 위한 다윗의 1차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수레에 법궤를 싣고 운반하던 중 운반 책임자인 웃사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다윗은 법궤를 옮겨오는 작업을 중단해 버리고 맙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다윗 왕의 뜨거운 열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웃사를 쳐서 그 거룩한 일이 일시 중단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까닭은 다윗 왕의 뜨거운 열심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수행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명령과 크게 달랐습니다. 다윗 왕은 레위인으로 하여금 어깨에 메고 운반하게 하라는 법궤 이동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상을 운반하는 방법을 따라 수레에 실어 옮겼던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동기와 좋은 목적, 헌신적인 열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방법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절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를 섬기고 봉사를 한다는 자 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여타 사람들처럼 교묘히 법망을 피해 가면서 불법을 자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자 하는 열심만 있었지 법궤 운반에 대한 하나님의 소상한 명령은 소홀히 합니다. 다윗 왕의 실수는 너무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궤를 운반해 보지 못한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바로잡으려는 방법입니다. 웃사의 죽음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해한 자에 대한 시범적인 징벌을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영광과 직접 연관이 있는 상징물입니다.

 

하나의 상징물에 불과한 언약궤를 경솔히 다룬 죄과가 그렇게 큰 것이라면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흘리신 언약의 피를 경솔히 여기는 죄과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을 수 없는 중차대한 죄악이니 그러한 비극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리 선한 동기와 좋은 목적, 헌신적인 열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대로 행하길 원합니다.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