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요한계시록 21:22~22:5)②[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꽈벼기 2025. 8. 7. 18:52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요한계시록 21:22~22:5)

 

22, 23절에 보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이곳에 성전이 필요치 않은 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 되어 항상 그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이란 인간이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성별한 장소였지만, 이제 예루살렘 성 전체가 성전이므로 별개의 성전이 필요치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빛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징들로 미루어 볼 때 참된 의미의 교회란 건물, 예배 의식, 행정, 직임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24~26에는 구속 받은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에서 누리게 될 생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만국이 빛 가운데로 다니게됩니다. 여기서 만국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별 없이 구속 받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또한, ‘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키는 것으로 거짓과 불의를 행한 자들은 그 앞에 설 수 없고, 오직 사랑과 진리와 공의를 실천하는 자만이 영광을 받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서 땅의 왕들이란 세상 권력자가 아니라 짐승과 바벨론에 대항하여 하나님과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께 충성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광을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찬미와 존귀를 돌리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게 될, 구속받은 성도들의 참된 예물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성문은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닫히지 않는다.’라는 것은 구속받은 성도들에게 부여될 참된 자유와 그 복된 생활상을 영원함을 보여줍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라고 했지만, 새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얼굴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여기에는 눈물도, 죽음도, 슬픔도, 부르짖음도, 애통하는 것도, 밤도, 곡하는 것도 없습니다. 즉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고, 다만 찬송과 예배, 복된 생활의 누림과 끊이지 않는 감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직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함을 받아 27절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며 또한 어린 양 되신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충성하는 이기는 자들뿐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유업입니다.

 

22:1~5, 본문에서는 창세기에서 잃어버린 낙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자연은 어두워지고 일그러지고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란 사실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그때엔 첫 창조 때에 에덴에서의 삶처럼 하나님과의 충만한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생명수의 강은 영원한 세계의 축복을 보여줍니다. 한편 이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흘러나온다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새 예루살렘에서 생의 원리가 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생명은 새 예루살렘에 끊임없이 흘러 그 안에 거하는 모든 성도에 구원과 영생을 줄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생명나무가 큰길을 따라 강 좌우에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나무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실 영생을 의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맺는 성령의 열매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도들은 그 과실을 먹게 됩니다.

 

또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있습니다. 이는 천국에 병자가 있다는 것과 만국이 새 예루살렘밖에 따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새 예루살렘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모든 것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구속 공동체만이 남아 있습니다. 더욱이 이 생명나무가 지닌 소성시키는 능력은 죄 많은 이 땅에서 눌리며 생활했던 성도들의 마음과 양심과 인격에 영향을 미쳐서 풍성한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3~5절은 새 예루살렘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생활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는 저주가 없다고 합니다. 핍박하고 방해하던 악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이는 성도들이 받을 최고의 복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모든 성도의 소원이며, 이 소원은 바로 이때 여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성도는 그들의 이마에 그의 이름을 표로 가질 것입니다. 이 표는 그들이 하나님께 완전히 속해 있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들의 주가 되셔서 보호하고 인도하심을 나타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빛이 되셔서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거하는 성도들은 실족할 염려가 전혀 없고 항상 하나님의 영광중에 거하게 됩니다.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무위도식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전력으로, 기쁨으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깁니다.‘성도들은 하나님을 직접 뵐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생활 전체로 예배하며 삽니다. 이곳에서 성도들은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됩니다. ’왕 노릇 하리로다는 것은 세상의 왕들처럼 타인을 지배하는 삶이 아니라, 왕의 영광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자유와 참된 권위를 갖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토록 엄청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에 대해 얼마나 감사하며 감격해하는지 돌아봅니다. 이 세상의 삶에 쫓기다 보면 우리는 마땅히 돌려야 할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원망의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통해서 나오는 생명수를 끊임없이 공급받을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으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성령 충만함으로 나 자신을 성결케 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내게 허락하사 나의 허영과 탐심 욕망이 성령 충만으로 버려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