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사울 왕가의 족보]
(역대상 9:1~34)②
9:1~9절,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귀환한 12지파를 기록합니다.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거주하면서 축성과 전건에 착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개하고 있는 본문은 1, 2절에서 지금까지의 간략한 경과, 3~6절은 예루살렘에 거한 유다 지파 사람들, 7~9절은 예루살렘에 거한 베냐민 지파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 문에 기록된 자들은 고레스의 칙령 후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 기록된 자들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다시 모여 한 국가를 이루는 데 주역이 된 사람들이었던 사람들입니다.
포로 귀환 후 여러 종류의 거민들 또는 지파들이 예루살렘에 거했음을 간략하게 소개한 후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족보를 상대적으로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함께 출발하였어도 그들의 종교적 선택과 열심의 차이에 따라 본서 기자에 의해 현저히 구분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10~16절, 포로 귀환 후 예루살렘에 거했던 레위 지파의 명단을 기록합니다. 10~13절은 24반차에 속한 제사장들과 대제사장 아사랴의 족보입니다. 14~16절은 레위 사람 중 찬송하는 자들의 족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본문에는 예루살렘의 종교적 의의를 살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 곧 레위인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당시 하나님의 유일한 은혜의 통로였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루살렘의 영적인 의의는 레위인들의 헌신적인 봉사가 없었다면 무효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소개한 인물들은 누구보다도 예루살렘의 영적 의의로 살리는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가장 먼저 돌아온 자들이 제사장이란 사실을 10~13절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편, 14~16절과 관련 구절인 33절에서 우리는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우두머리라 그들은 골방에 거주하면서 주야로 자기 직분에 전념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구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얼마만큼 헌신적이었는가 하는 사실을 새삼 재인식할 수 있습니다. 즉 그들은 일평생 동안 자신 전체를 여호와께 드린 것입니다.
17~27절, 17~21절은 문지기들의 두목들, 22절은 문지기의 조직적인 봉사의 시작, 23~27절은 문지기의 조직적인 봉사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천하게 보이는 직무일지라도 최선을 다하여 영광을 얻은 문지기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이들의 직무가 대제사장이나 제사장들, 또는 악사 등의 직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천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의 직무는 기껏해야 제사 또는 예배를 가능하게 하려고 성막 주위를 감시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본 문에는 문지기 두목들이 다른 문지기들보다 훨씬 헌신적으로 봉사했다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 상주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특별히 아침마다 문을 여는 책임을 항상 감당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말로만 일꾼들에게 지시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모범적인 행동으로 성막의 문지기들 전체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28~34절, 기타 레위인들이 담당했던 다양한 직분을 소개합니다. 28절은 기명을 맡아서 일하는 자를, 29절은 성소의 기구를 담당한 자, 30절은 향기름을 만드는 자, 31, 32절은 진설하는 떡을 만드는 자, 그리고 33, 34절은 찬송하는 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레위인들은 크게 볼 때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제사직에 봉사하였지만, 세부적으로 볼 때 그들의 직분이 매우 다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레위인들 각자의 책임 소재가 각자 각자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달란트에 따라 직무를 맡기시고 그 직무를 게을리 하거나 그 맡은 일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레위인들의 직무는 이렇게 됨으로써 한 직무가 중복되는 일이나 서로 다른 사람의 책임 있는 직무를 월권하는 일이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의 다양한 직분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통제하에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어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부귀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하나님 전의 문지기가 되기를 희망하길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더욱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문지기임을 자처하고 그 직무를 실행하는 자에게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욕심이 사라지게 되고 더불어 평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행복입니다.
●지도자는 남들보다 더욱 부지런해야 하며 일꾼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거울삼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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