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빌립보서 2:5~18)[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꽈벼기 2025. 5. 26. 22:30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2:5~18)

 

5~11, 하나 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으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섬길 것을 당부한 바울은 설득력을 더하기 위하여 가장 훌륭한 실례로서 그리스도의 겸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생애 전체를 통하여 겸손을 몸소 실천하실 분이시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본질상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삼위일체의 한 위로서 신적인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누릴 수 있는 분이셨으나 본래의 하나님 형상을 비우고 종의 형상을 취하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참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었으며, 그뿐 아니라 자신을 낮추시어 죽기까지 복종하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보다 존귀한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한없이 낮추사 최악의 죽음까지 감수하셨다는 사실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시기나 분쟁과 다툼은 다 악한 것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어떤 이들은 낮아지는 것이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는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비록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오르게 하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만물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이름을 주셨던바, 곧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존재로 하여금 주 예수의 이름에 무릎 꿇고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이 있었기에 모든 피조물은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그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 안에서 하나가 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큰 영광이요, 성도들 자신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존귀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12~18, 옥중에서 믿음의 자녀들에게 권고하고 있는 바울은 그들이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힘써 달라고 간곡히 호소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구원은 중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듭남이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미 구원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얻은 자들이지만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기에 힘써야 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한 삶, 곧 성화의 과정은 인간이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컨대,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생활을 열심히 할 때 보다 원숙한 구원의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계획과 경륜을 쌓고 성도들 가운데 내재하고 계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무책임한 삶을 영위해서는 안 될 것이며, 소망과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교회에서뿐 아니라 나아가 세상에서도 마땅히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왜곡된 이 어두운 세대 가운데 빛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흠과 티가 없는 순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흑암에 둘러싸인 세상에서 갈 방향을 모르고 헤매는 영혼들에 광명을 던져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 자신들의 구원을 완성해 나갈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세상에 전하는 반사체로서의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부디 사랑하는 빌립보 교인들이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바울의 모든 사랑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그리스도 앞에 서는 날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격려하여 아무쪼록 그들이 성숙한 믿음의 단계에 이르기를 염원하는 바울은 자신의 북받쳐 오르는 심정을 토로합니다. 마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가 완전한 것이 되기 위하여 제단에 포도주를 부어 전제를 드리는 것처럼 빌립보 교인들의 신앙의 제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버려 피를 흘린다고 할지라도 기뻐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자녀인 빌립보 교인들의 영적 신앙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목자로서의 바울의 진정한 기쁨은 양들이 성숙한 신앙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를 원하였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러하셨듯이 진정한 목자의 모습은 양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목자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 시대에 사도 바울의 진실한 고백은 커다란 귀감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동안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환난과 곤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에 인내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우리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겸손함과 복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 때 우리는 지속해서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죽기까지 복종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을 취할 수 있습니다.

 

나의 손을 나의 시간을 나의 돈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나눌 수 있길 원합니다. 항상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