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예레미야 15:1~9)②[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꽈벼기 2023. 8. 6. 07:11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예레미야 15:1~9)

 

1~4, 하나님은 이전과는 달리 구체적으로 심판의 성격을 규정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4가지의 선별적인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재앙으로 인한 죽음, 칼로 쳐 죽임을 당함, 기근으로 인한 죽음, 포로로 잡혀가게 됨 등입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통치 기간 중 예루살렘을 너무 우상으로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후에 전개되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조차도 단지 파멸을 지연시키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결국, 유다 심판의 역사적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지점으로 가버린 유다의 패역에 있습니다.

 

5~9, 유다의 심각한 파멸의 본보기로서 유다 백성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의 파멸 현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는 화자로 등장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심판을 당할 때 불쌍히 여기며 슬퍼할 자가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루살렘은 끝까지 자신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분인 하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미련과 동정 없이 예루살렘을 파괴 하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마치 농부가 곡식을 까부르는 것과 같이 예루살렘을 까불러서 겨와 같은 악인들을 제거합니다. 이제 그 심판의 참담한 효력이 온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미치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성읍 여인들의 남편들이 적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하자 과부들이 모래알보다 많아지게 됩니다.

 

일곱 아들을 소유한 어머니들은 노년에 기쁨을 누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들들의 몰살로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처참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소개함으로써 예루살렘은 유다 백성의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절망의 현장으로 전락하게 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은 영광을 치욕으로, 존귀를 멸시로 변경합니다.

 

한편,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사람의 중재자인 모세와 사무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에스겔은 노아, 다니엘 및 욥을 예로 들기도 하였습니다. 모세는 배역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 요청을 수락했습니다. 사무엘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하였으며, 역시 같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서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중재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설혹 모세와 사무엘이 다시 와서 중재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보기도는 내가 남을 위해서 눈물을 뿌려주는 기도 중의 기도라 하겠습니다. 그것은 나보다 타인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희생정신이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습니다. 남이 나를 위하여, 또 내가 남을 위하여 기도해주는 기도 공동체야말로 주님께서 이룩하고자 하셨던 천국 모형입니다.

 

주위에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아직 없지만 만일 있다면 기도하며 마음을 돌려야 함이 필요합니다. 나의 죄에서 돌아서길 원하며 기도를 단절시키는 주님께 내어놓고 용서받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