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5~13)②
바울은 본문에서 레위기에 있는 말씀(레18:5)을 인용함으로써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 밝히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는 율법의 수여자 모세가 말한 것처럼 그것을 행하는데 생명이 있습니다. 하늘의 높은 곳에도 음부의 깊은 곳에도 율법의 명령이라면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해야 하는 것이 율법의 의의 성격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구약의 말씀을 수사학적으로 의역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즉 ‘계명을 실행한다.’를 ‘의를 행한다.’로 표현하였습니다. 의는 율법 준수에서 의로써 그것은 행위와 관련되고 행위는 인간의 능력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음부로부터 하늘에 오르신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활시키기 위해 그를 끌어올리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은 인간의 능력이나 공로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의를 얻기 위해 율법이 지시하는 대로 하늘에 올라가거나 음부에 내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이미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신명기의 말씀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여 인간은 자신의 의를 이루기 위하여 선을 행하고자 하여 하늘에 오르기도 하며 또한 자신의 죄를 책임지고자 하여 음부에 내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하나님 앞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죄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범한 종교적인 죄가 바로 그것입니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 즉 율법의 의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으로 하나님의 주권 영역이며 인간은 오로지 믿음을 통해서만 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과는 무관한 율법의 의를 논의한 바울은 이제 인간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다른 방도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을 때 구원의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바울은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에는 말씀의 준행을 강조하는 성구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말씀의 준행은 믿음으로부터 출발하여 믿음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의롭게 되는 원칙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의는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구약의 말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선포로 된 오늘날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듣는 자의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다는 것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으로 구체화한 말씀이 사도들의 선포 속에 현재 있으며 가까이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시합니다. 그러므로 의롭게 되는 길을 얻기란 쉬운 것입니다. 즉 열려 있는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의 말씀은 ‘문자’의 개념이 아니라 ‘영’의 개념인 것을 주지하여야 합니다. 구약의 말씀이 성령에 의해 해석되지 않고, 또한, 종말론적인 믿음의 의를 지향하지 않을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죽은 문자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성령은 새 계약을 가져오며 성경을 새로운 빛으로 조명해 줍니다. 인간을 죽이는 명령과 문자는 성령에 의하여 생명을 주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대치됩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씀의 주제는 이스라엘이 이제는 죽은 문자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살아있는 영의 말씀에 가까이 서서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의하여 조명된 말씀, 곧 그리스도에 의하여 현실화하고 구체화한 구속의 말씀만이 이스라엘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시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막을 내렸으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경은 생동감 있는 말씀이 되었고 문자 이상의 의미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구원이 가까웠다고 선포한 바울은 이제 구원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입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으며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며 여기에서 입으로 고백하는 행위와 마음으로 믿는 행위를 연관시킵니다. 사람의 마음과 입은 통일되어 있거니와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켰다고 믿을 때 그는 구원을 받게 됩니다. 신앙 고백과 신앙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거니와 바울은 여기에서 구원과 세례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얻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칭의와 구원은 일치합니다. 내적으로 변화를 받아 의를 인정받고 외적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고백함으로 구원의 길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덧붙여 바울은 구원의 보편성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는 자는 누구든지 부끄럼을 당치 아니합니다.
의는 믿음에서 나고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미치어 보편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그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구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보편주의를 표명합니다. 구원은 특정한 소수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우주적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우월 의식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함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재건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이 잘못된 지식에 사로잡혀서 올바른 진리를 멀리하고 있을 때 담대히 그것을 지적하고 바른 삶의 도리, 즉 복음의 도리인 그리스도의 의를 선포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을 사는 성도들이 참으로 본받아야 할 자세입니다. 오늘날처럼 생존 경쟁이 치열하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기에 머리로는 바른길을 알면서도 현실의 조건에 의해 그릇된 길로 가기가 너무도 쉽습니다. 우리가 가진 열심히 아무리 큰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의, 율법의 완성이며 모든 인간 삶의 원천인 복음의 도리와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매일 대하는 성경 말씀 속에서 매 주일 듣는 설교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내 생활에서 매 순간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허락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