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전도서 7:1~14)②[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꽈벼기 2022. 12. 9. 09:0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전도서 7:1~14)

 

전도자는 갑자기 분위기를 전환하여 죽음의 날이 출생의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죽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저자가 갑자기 죽음 선호론 자나 예찬론자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죽음을 통해서 숙연해지고, 허무한 인생을 그대로 보내지 않고 보람 있게 살려고 하는 자극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전도자가 첫 절에서 아름다운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라고 언급한 다음 죽는 날’, ‘초상집’, ‘슬픔등의 표현을 사용한 점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 줍니다. 결국, 전도자는 본서의 최종 결론과 같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듣도록 권고하는 것입니다.

 

5~10절도 같은 맥락에서 의미를 전달합니다. 전도자는 지혜자의 책망을 우매자의 노래나 웃음소리보다 낫다고 규정함으로써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보다 지혜로운 자의 권고를 받아들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도자는 삽입 형식으로 탐욕뇌물의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요소들은 지혜자로 하여금 삶을 진지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해 요인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도자는 지혜의 유익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세상 지혜가 아니라 신앙이 주는 참 지혜입니다. 세상 지혜는 무익하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는 가운데 얻어진 지혜는 연약한 인간들이 올바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줍니다.

 

결국, 전도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겸허하게 인정하는 지혜를 소유한 자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자이든 악한 자이든 다 부름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또한, 준비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결국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살아갈 때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이 잘될 때는 기뻐하고 감사하고 일이 잘 안될 때는 생각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