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야고보서 3:1~12)②[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꽈벼기 2021. 7. 6. 09:12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야고보서 3:1~12)

 

1~2, 유대인들은 높은 지위와 권력을 손에 넣는 것만큼 선생이 되고자 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선생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존경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나온 선생은 우리가 그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르칠 것도 없으면서도 선생이 되려는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이제 야고보는 선생의 역할과 그 책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가 본래 말하고자 하였던 중심 주제인 온전한 사람으로 넘어갑니다. 온전함은 성숙을 말합니다. 여기서 야고보가 말하는 온전한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일 스스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에 실수가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3~5, 혀의 영향력을 설명합니다. 비록 혀가 몸을 통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혀로 인하여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재갈의 비유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습니다. 야고보는 재갈이 비록 작지만 큰 말을 움직이게 하듯이 세 치 밖에 안 되는 혀지만 그 영향력은 화자의 인격, 나아가 삶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이 예화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큰 광풍에 비교할 때 배의 키는 상대적으로 작게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키가 없다면 배는 바다 가운데서 표류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키는 배를 움직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사람에게는 혀가 배의 키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혀는 사람의 일생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5절에 나오는 불은 6절의 불과 다릅니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혀의 영향력은 많은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삽시간에 태울 정도로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혀를 조심스럽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6~8, 혀를 지키지 못할 때 오는 결과들을 두 가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그 첫째가 6절에 나오는 불입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라고 합니다. 혀는 전인격을 부패시키며, 삶의 행로를 불사릅니다.

 

다른 하나는 7~8절에서 언급합니다. 혀가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짐승과 새 그리고 바다의 고래와 같은 것도 사람에 의해서 길들지만 혀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길들지 않은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입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혀는 올바로 다스리지 아니하면 파괴적인 결과를 낳고야 맙니다. 길들지 않은 혀는 또한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처럼 위험합니다.

 

9~12, 변덕스러운 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한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함께 나올 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거듭난 성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에게 그가 고백하는 믿음과 그의 삶에서 행동의 불일치가 어울리지 않듯이 혀의 불일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감람나무의 열매가 맺혔다면, 그 나무는 무화과나무가 아닙니다.

 

스스로가 아무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또 입으로 주여하며 많은 능력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그 입술의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이 내용 속에 깔렸습니다.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으면, 완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어지려면, 혀를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에 재갈을 먹여 혀를 조심하였던 시편 기자처럼 혀를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단물만 내는 선한 혀를 가짐으로써 축복받는 성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내 혀의 모든 말을 주님의 지배 아래 두길 원합니다. 나의 언어생활이 주님의 지배를 받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통치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