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누가복음 23:26~43)③[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꽈벼기 2021. 4. 2. 07:42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나이다]

(누가복음 23:26~43)

 

땅에서의 반응은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도상과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과 운명하신 시간에 걸쳐서 발견되어 지는 것은 그 내용에 있어 조롱과 영접 내지는 동정으로 세분할 수 있습니다. 조롱과 멸시는 주로 백성들과 관원 그리고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행해집니다.

 

이들 행위는 영적 무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수님의 기도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하중을 모르고 있습니다. 영접과 동정은 주로 일부 백성들과 예루살렘의 딸들로 지칭된 큰 무리의 여자들 그리고 사형 집행인인 백부장들에 의해서 나타나는 반응들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안타깝게 여기며 울면서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비추어 보건대, 이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인간적인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하는 것은 이들의 간절하고 동정심 넘치는 심령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 초대 교회의 역동적인 활동에 주체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함을 암시해 줍니다.

 

한편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면서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히 보고 들을 수 있었던 백부장은 예수님께 대한 계시에 어느 정도 올바르게 근접한 듯합니다. 공관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선민으로서 말씀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롱과 계시에 무지했던 이방인 백부장의 고백은 동쪽이 서쪽에서 먼 것처럼 분명한 대조를 보여주며, 이것은 유대인들의 실족과 실패가 이방인의 부유함으로 나타났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반응은 두 강도 중 한 강도는 예수님을 경멸하는 말을 서슴지 않지만, 한 강도는 회개를 통해서 구원을 보장받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길을 걸어 왔던 두 강도의 다른 최후를 보면서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임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흠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함으로써 받은 이스라엘의 재앙은 실로 막중한 것으로서 당시 이혼 사유에 해당했던 여자의 불임 내지는 무자가 오히려 재앙이 닥칠 때 복이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흉악한 범죄자로서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된 우편의 강도가 죽음의 순간에 예수님과 낙원의 친구가 되어 동행했다는 것은 그 참혹한 자리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감격스러운 삽화로서 후세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영감을 불러일으켜 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저 우편 강도의 마지막 순간의 태도를 배워 언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심판에 이를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삶에서 용서받아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보혈의 피로 더럽고 추한 죄악들을 깨끗이 사하여 주시고 날마다 기쁨으로 주님과 교제하길 원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