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누가복음 1:26~56)③[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꽈벼기 2021. 1. 2. 08:41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누가복음 1:26~56)

 

26~38, 사가랴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다 같이 아들이 태어나리라고 약속된 점은 같습니다. 하지만 예언의 실제 내용에서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때문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수태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전혀 남자를 알지 못했던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수태가 되었다는 점에서 사람의 이성으로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최대 이적 중 하나입니다. 바로 동정녀 탄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분이 높거나 성숙한 여인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나사렛 동네에서 정혼한 어린 소녀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사역에 쓰시고자 할 때 우리에겐 두려움이 따릅니다.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도 생각해야겠지만 동시에 순종했을 때 우리가 받는 복도 생각해야 합니다.

 

천사는 순종에 따른 커다란 특권을 마리아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나이 많은 엘리사벳도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소식을 전해주며 그녀를 격려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영원한 진리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이러한 말들을 듣고서 마리아는 두려웠지만, 기꺼이 순종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39~45, 천사 가브리엘의 예언대로 장차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하는 선구자로서의 사역을 담당할 것이며 또한 예수님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는 자요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더할 수 없이 높은 분으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세례 요한이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을 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기뻐 뛰놀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이 복중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를 내 주의 모친이라 부른 점이나 천사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보인 점 등은 엘리사벳의 깊은 신앙과 심오한 영적 지혜를 엿보게 합니다. 여기서 내 주란 곧 오랫동안 대망 되어온 메시아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예언케 하신 바로 그 를 가리킵니다. 물론, 엘리사벳이 이러한 말을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성령의 감동이 있었기 때문이겠으며, 또한, 이적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수태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였던 것이 바탕이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메시아를 잉태한 마리아를 여자 중에 가장 복 있는 자라고 노래했으며, 마리아도 자신을 만세에 걸쳐 복 있다 칭함 받을 여인으로 말하며 감격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분명 하나님의 아들의 어머니라고 하는 놀라운 축복과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장차 십자가 형틀을 바라보는 뼈아픈 슬픔으로 변할 것이었습니다. 마리아에게도 역시 한 인간으로서 져야 할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으며, 어쩌면 주의 모친이라는 축복된 신분 때문에 그 십자가의 무게가 더 무거웠을 것입니다.

 

46~48절은 마리아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해 드리는 내용이며 49, 50절은 하나님의 권능과 성품들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51~53절은 겸손한 자에게 베푸시는 공의로우신 보상을 언급하며, 끝으로 54, 55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회상합니다.

 

이 찬가에는 시편의 인용구로 짐작되는 구절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며 시편 외에도 역사서의 내용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마리아는 구약 성경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억눌린 자들을 옹호하는 내용이 두드러집니다.

 

교만한 자를 낮추고 권세 있는 자를 파하며 주리는 자를 배불리 먹이시는 등 주께서는 도덕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인 면에서 가히 혁명적이고도 근본적인 변혁을 초래케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 지적됩니다. 이는 마지막 날에 공의의 심판에 대한 비전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자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본서의 전반적 특징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이 찬가는 처음에는 마리아의 개인적 찬양과 감사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에 관한 소망으로 끝납니다. 마리아는 과거 이스라엘의 열조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약속들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백성들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은혜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처럼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마리아는 언약 백성을 영원히 보호해주실 것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앙생활에 관계된 일이라면 어떤 두려운 모험이라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하셨는데 이런 경이로운 일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께서 내주하시는 일로부터 시작합니다. 마리아의 순종이 주는 의미가 큽니다. 감사 없는 신앙생활은 향기 없는 꽃과 같습니다. 향기를 잃어버린 꽃은 진정한 꽃의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메시아의 어머니가 된 영광스러운 존재임에도 자신을 가리켜 비천한 여종이라고 표현합니다. 겸손이란 신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인격적 단계입니다. 마리아는 자기에게 주어진 약속이 철저하게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약속에 대한 확신은 우리의 심령 가운데 큰 편안을 제공하고 찬송하게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순종하는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 드리는 순종의 삶이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복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행위보다는 믿음을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쓰시고자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관심을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좀 더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참 기쁨을 회복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