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마가복음 11:1~19)②
1~11절, 예수님은 환호하는 수많은 무리는 물론이고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들과 유대교 지도자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끔 공개적으로 입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중 많은 시간을 갈릴리의 외딴 지역에서 보내셨고 크신 권능을 베풀 때도 그 일을 비밀로 해두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치 개선장군이 승리를 거두고서 입성하듯이 의도적으로 무리의 환호를 받아 가며 당당하게 들어오신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기 위해 늘어선 무리의 환호 소리는 예루살렘 곳곳을 울렸을 것입니다.
더구나 유월절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에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몰려들고 있었고, 그들 또한 예수님의 입성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듯 입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신 이유는, 인류의 대속을 위해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에 당도하셨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유대 군중들과 관원들 및 유대교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로마인들까지 포함한 많은 증인 앞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당시 수많은 백성은 예수님을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아로 착각하고서 열광적으로 환호하였지만, 정작 주께서 사로잡혀 재판정에 섰을 때는 도리어 냉소와 조롱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처단함으로써 자기들이 승리를 거둔 것이라 확신하였음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여러 사람에게 부활을 증명하심으로써 진정한 승리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 보이셨던 예수의 당당한 승리자 적 모습은 바로 부활과 나아가 재림 때에 드러낼 영광과 승리를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더구나 그 나귀마저 빌린 것이었고 안장이 없어서 제자들의 겉옷을 깔았습니다. 이것은 스가랴 9:9절의 성취로서 주께서 겸손하며 또한 평강의 왕이심을 나타냅니다. 몇 조각의 빵으로 수천 명을 먹이신 주께서 스스로는 때때로 배고픔을 감수하신 일이나, 죽은 자를 소생시키셨던 권능의 주께서 스스로는 죽음의 쓴 잔을 마다치 않으신 사실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비록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겸손한 왕이신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권능이라고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무력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수많은 정복자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묻혀 버렸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희생시킴으로써 온 세계를 정복하신 가장 강력한 정복자십니다.
한편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입성은 평화의 왕 메시아이심을 알리는 일종의 무언극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는 자신이 왕이요 메시아이심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무언의 행동과 무리의 찬미 소리가 예수님의 입성 의의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12~19절, 무화과나무 이야기가 뒤에 이어지는 성전 숙정 기사와 직접 연관된다는 점에서, 성전에 대한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전이란 의식과 형식주의에 급급하였던 유대교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 대한 심판 예고는 성전을 발판으로 삼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던 당시 제사장의 권위에 대한 정면 대결을 선포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도래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심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특정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성전의 원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입술로는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요란하게 떠들면서 실상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던 당시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상징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다운 면모를 상실한 채, 선민으로서의 특권 의식만 사로잡혀 이방인들에 대해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나타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이 탄생할 영적 이스라엘을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제자들을 보게 됩니다. 매여 있는 나귀를 풀어 올 때 주인의 항의를 받을 것이 뻔하지만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것을 믿었기에 상식에 벗어난 것 같았으나 명령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나귀를 내준 주인을 보면 주님이 쓰신다는 말을 듣고 아무 소리 없이 내어 줍니다. 그런 가운데 나귀는 영광스럽게 사용됩니다. 나귀 자체는 별 가치가 없지만, 주님을 위해 쓰임 받았다는 것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시간과 소유를 해야 하실 때 기꺼이 내어 드릴 수 있는가 하고 자문해 봅니다. 보잘것없는 나를 부르신 주께 감사하기를 원하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과 그리스도를 위해 영광스럽게 쓰임 받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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