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9:30~50)②
30~32절, 예수님과 제자들은 변화 산을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두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장차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3~37절, 서로 높아지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혁신적인 가치관을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거듭되는 수난 예고를 듣고서도 그 뜻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데 대한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을 강렬하게 기대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머릿속에는 머리 둘 곳도 없이 가난하고 쓸쓸하게 지내시며 병들고 가난한 무리를 위해 수고하시는 종의 모습보다는 이적인 권능을 행하며 영광중에 거하는 승리자의 모습만이 인상 깊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서 그 수난의 의미를 주지시키기 위해 애쓰시는 주님과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영광에 더욱 집착해가는 제자들 간의 괴리감은 이후의 내용에서 더욱 현저해져 갑니다. 그들은 외관상으로는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예수님을 따랐지만, 참된 메시아관에 대해 무지하였고 신앙 도리의 심오한 참모습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영적 측면에서는 갓난아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겸손과 봉사, 나아가 자기희생을 강조하는 예수님의 교훈은 세상의 가치관에 비할 때 실로 파격적이며 혁신적이라 할 만합니다. 약육강식적인 힘의 논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의 일반적 가치관을 지배해 왔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에 몰두하기를 좋아하며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이기적 욕망이 서로 충돌하면 소위 세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장소로 전락하고 맙니다. 인간의 삶을 이런 관점에서만 파악하게 되면, 어떤 이기적 목적을 만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돈과 권력으로 압축되는 세상의 힘을 얻지 못하면 심히 불안해합니다.
힘의 논리가 더 신봉되어가고 극단적 이기주의가 팽배해 감에 따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숭고한 천국 시민의 윤리는 단지 허공에서만 맴도는 추상적 이상론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악인의 영화는 실로 덧없는 것이요, 주님이 다스리는 공의와 사랑의 나라가 조만간 온 누리에 임하리라는 믿음을 확고히 가진 자는 본문의 교훈을 정금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또한 천군만마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여길 것입니다.
본문에 수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요한을 위시한 제자들의 시기심과 파벌 의식이 직접적 발단이 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속적 야심에 사로잡혀 주님 일꾼의 사역을 금지했다는 점에서 무지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들 간에 서로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불화를 일으켰거니와, 이제 여기서는 그들과 친분이 없는 자들의 활동에 대해 공통으로 시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지상에서 메시아 왕국의 도래 때에 자신들 외의 사람들이 요직을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사로잡혔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제자들의 기억 속에는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치유하지 못했던 쓰라린 경험이 강렬하게 되살아났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세속적 권력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 상호 간에는 물론이고 대외적으로도 이간과 경쟁의식을 드러내 보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섬김의 도를 재차 강조하면서 화목을 추구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배타적 편견과 독선적 특권 의식을 버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될 것을 가르치십니다. 주님이 힘주어 경계하신 당파성과 분리주의는 초대교회와 향후의 교회사 전체를 통해 나타났던 가장 큰 병폐 중의 하나였습니다.
교회 주인은 오직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실리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교파로 갈라서거나 새로운 군소 교단을 만들어 행세하려는 자들은 예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43~49절은 범죄에 대한 경고라 할 수 있습니다. 앞의 본문은 배타적이고 세속적인 당파심이라 하겠지만 넓게는 제자들이 처한 전반적인 심령 상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영적 무지와 완악함에서 벗어나지 않는 모든 불신 세력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본문의 경고가 매우 신랄하고 엄격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엄청난 고난을 겪으시지 않으면 안 되었을 만큼 인류의 죄악이 심각한 성질의 것임을 시사함과 아울러 영생의 축복이야말로 그 어떤 희생을 지불해도 아까울 것이 없는 고귀한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으므로 당장에는 그들이 무지와 불신 가운데 크고 작은 실수를 연발하는 것을 용납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사랑으로 훈계하셨지만 성숙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될 죄악된 요소들이 있음을 분명히 천명하고 계십니다.
◆종의 도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누가 크냐’란 쟁론은 자주 보아온 모습들입니다. 예수님의 이것을 아시고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하고 섬기는 자가 지도자입니다. 최고의 지도력은 ‘종의 지도력을 말합니다. 종의 도는 가난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누구든지 영접하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작은 자 한 사람을 도와주는 자가 예수님께는 제일 큰 자입니다.
사랑이 많기로 유명한 제자 요한이었지만 그는 한때 어떤 사람이 분명히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단지 제자들 무리에 속해 있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만 정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요한을 책망하면서 누구든지 예수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예수님 이름을 반대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자들은 다 나의 사람이라고 옹호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좁은 시각으로만 남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자기 교만과 아집의 창구멍으로 남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예수님의 넓은 안목을 가지고 남을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형제를 잃지 않고 남을 실족시키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드시고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주신 현 자리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시고 겸손한 마음과 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력을 베푸는 사람들이라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소금이 되어서 내 삶 가운데 거하고 그 소금이 내가 죄짓지 않도록 막아주며, 다른 사람과도 화목할 수 있게 해 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진리로 내 마음을 정결케 하도록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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