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꽈벼기 2020. 1. 21. 08:03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창세기 15:1~21)

 

1~11절 신자 중에는 신앙의 주 관심사를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육신적 은혜물질적 축복에만 국한하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 스타일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이외의 것을 신앙하는 것으로 엄밀히 따져 우상 숭배에 해당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제공하는 것에만 자기 마음을 둔다면 그 신앙은 상당히 유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아브람도 초기에는 바로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였기에 그 약속하신 바가 성취되지 않자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의 원천이자 그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실 분이심을 계시하시고 오직 하나님에게 시각을 고정하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축복은 신앙에 앞서 선행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관 아래에 있음을 알림으로써 그에게 온전한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약속에 대해 거듭 의문을 제기하는 아브람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에게 미래에의 환상과 희생 제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을 확인시키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상한 배려로 인해 아브람은 참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 아브람을 향하여 하나님은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신앙의 주제는 가 아닌 하나님이시며 신앙의 유일한 대상 역시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신앙의 열매는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입니다.

 

12~21절 하나님은 거룩한 일을 함께할 동역 자들에게 능력과 위로를 제공하실 뿐 아니라 앞날의 계획을 계시하셔서 그들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하게 하며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본문은 위의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흑암 중에 아브람에게 계시하셨던 약속들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개괄적으로 묘사한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아브람과 그 후손들이 왜 가나안을 지금은 바로 차지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언급한 것이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아브람의 후손이 당장은 가나안 땅의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차지하게 될 기업임을 기다리며 바라게 하시고, 그 약속의 신실함을 입증하시기 위해 횃불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비이성적이거나 독재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며 백성과 상호 협조적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을 알 때 우리는 그릇된 신관에서 탈피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견고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나이는 많으나 자식이 없는 아브람은 인간으로서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간 그는 의롭다고 하심을 얻었으며 훗날에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자세이며 결과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신앙한다면, 우리는 아브람이 경험한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집시다. 그리하면 솔개와 같은 잡동사니 세상 생각과 진리의 훼방꾼들은 우리가 가진 뜨거운 사랑에 쫓겨 갈 것입니다. 마치 파리가 뜨거운 솥뚜껑에는 앉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을 할 때도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들은 대로 순종을 하였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구원의 확실성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뜻하신 바를 이루시고야 마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찬양하며 변함없이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평강이 회복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