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시편 145:1~21)
1~2절, 시인은 먼저 하나님을 날마다, 그리고 영원히 찬양하리라는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밝힘으로써 본 시를 시작합니다. “주를 송축하리이다”라는 말을 무려 세 번씩이나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단호한 결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행복할 때뿐만 아니라 찬양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같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1절에서 시인은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통치를 겸손히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영원하며 날마다 선택된 백성들을 축복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3~7절, 3절에서 시인은 이제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하며, 4절에서 이것이 ‘주의 행사‘,’주의 능한 일‘ 5절에서 ’주의 기사‘, 6절에서 ’주의 두려운 일‘ 등을 통해 선포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특히 시인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세대만으로 하나님의 광대하심에 합당한 찬양을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4절에서 말합니다.
시인은 여기서 대대로 이어지는 세대들이 달리는 종들이 되어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전한다 해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하나님의 크신 행사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7절에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시인은 하나님이 행하신 바를 생각하면서 그분의 은혜와 공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8~9절, 본 단락에서 시인은 앞에서 말했던 하나님의 크신 행사가 사람을 위협하고 공포로 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증거라는 사실에 대해 노래합니다. 광대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본래 연약하며, 홀로 설 수 없고 실수투성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시인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과 통치인데, 특히 8, 9절에서 주의 나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심판이나 정죄보다는 사랑과 자비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 세상 나라와 권력은 사랑보다는 심판, 명령, 관용보다는 징계, 자유보다는 강제를 더욱 앞세웁니다.
그러므로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일방적이고, 보복적이 됩니다. 그러나 15절에 주의 나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 사랑과 인자가 풍성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분을 앙망합니다. 그런데 9절에서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단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존재에게로 확장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10~13절, 본연에 이르러 시인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존재와 성도들을 향하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계의 중심적인 위치에 두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 세계적인 통치가 실현될 모습을 예언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실 본 시편의 3~9절과 14~21의 내용은 역사의 완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위엄, 권능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묘사하는 것 중에 첫째는 주의 나라는 권능과 위엄의 나라입니다. 둘째는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14~21절, 결론부인 본 단락에서는 하나님 통치의 성격이 세상의 권력과 첨예하게 대조되어 묘사되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통치를 약자에 대한 보살핌이라는 측면에서 이기적이고 냉혹한 세상 나라와 대조하고 있습니다. 패자는 언제나 비참한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14절에서 하나님은 패배한 자들을 구원하시며, 인생의 무거운 고난과 싸우는 자들의 마음을 고무 시켜 주시며, 그들에게 필요한 은혜와 도움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우주적 돌보심을 노래합니다. 15, 16절에 하나님은 때를 따라 인간을 포함한 만물에 먹을 양식과 필요한 것을 제공하여 주십니다. 이 점에서 인간은 대자연과 더불어 같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게 살다가 하나님이 생명을 불러 가시면 흙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18, 19절에 하나님은 자신에게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초월하신 분인 동시에 내재자이시므로 자신에게 진실로 간구하는 자에게 하감하셔서 은혜를 베푸시며, 반대로 교만한 자에 대해서는 책망하십니다.
20절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마음의 소망을 주시며 모든 악으로부터 승리케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통하여 끝까지 보존되고 기쁨과 소망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하리라는 자신의 다짐을 다시 한 번 21절에서 반복하면서 모든 육체가 자신의 찬양에 동참하도록 촉구함으로써 영화로운 찬양시를 끝맺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구원의 사역에 있어 하나님은 언제나 능동적으로 주도적 역할을 다 하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인간 역시 상대적 존재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간구하고 경외하고 사랑하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성품을 드러내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유지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망하면서 오늘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주님의 광대하심을 날마다 고백하며, 의로우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의 말씀을 보내니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0) | 2019.12.28 |
---|---|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0) | 2019.12.27 |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0) | 2019.12.25 |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0) | 2019.12.24 |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0) | 2019.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