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4:1~13)
1~5절, 본 문 맨 앞에 언급된 144,000명은 7:4의 144,000명과 같은 무리로 단순히 유대 지파나 유대인 성도만이 아니라 구속받은 모든 성도를 총칭한 완성된 교회를 가리킵니다. 여기에 나타난 144000은 이마에 아버지와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의 이름이 쓰여 있어서 우리는 그들이 짐승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라는 말씀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영원히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커다란 위로와 확신을 얻게 됩니다. 이들은 7장에 나오는 인 맞은 자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시온 산에서 어린양과 함께 거합니다. 시온은 우리가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인 쳐졌음을 나타내며, 그곳에서 우리는 승리와 감사로 구속의 기쁨을 노래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제 십사만 사천 명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릅니다. ‘새 노래’는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보좌 앞에서 부를 것으로 이 노래를 배우고 부를 수 있는 자는 어린양과 하나님의 이름이 그 이마에 새겨져 있는 144,000명의 성도들뿐입니다.
이때 ‘새 노래’는 5:9의 노래와 같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을 얻으시고 통치하시기 위하여 피로써 사람들을 구속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면서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거나 본 단락에서는 이 새 노래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 받은 성도들에 의해 불리고 있습니다. 이 새 노래의 제목 혹은 주제는 5:9이나 본문에서나 모두 ‘구원’입니다.
또한, 이 노래를 ‘새 노래’라고 부른 것은 이 노래가 모든 옛 노래들과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새 노래는 오직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 즉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창조된 사람들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익은 열매 외에는 아무도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마음이 새로워지고 지식이 새로워지고 생명이 새로워진 새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본 단락의 4, 5절은 구원 받은 144000의 성격 또는 자격을 논하는데, 그들은 여자가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결히 있는 자들입니다. 이는 그들이 모두 독신으로 지냈거나, 독신으로 지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적인 의미에서 성도의 신앙 절개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확실히 이 144,000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랐으며, 그들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리스도를 따라갔던 자일 뿐 아니라 온갖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충성된 믿음으로 주 만을 위해, 주 만을 따라 산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십자가로 인한 최선의 열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바쳐진바 된 동시에 자기의 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고 헌신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흠이 없는’은 생활의 정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위의 세 가지 특징들의 결과로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때 ‘흠이 없는’이란 단어는 특별히 제사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는 이방 세계와는 달리,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체 타협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6~13절,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외칩니다. 다른 천사는 독수리처럼 공중을 날며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 복음은 ‘영원한 복음’인데 종말적 심판과 신자의 구원에 한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가 땅에 거하는 모든 자에게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생의 본분이며 영원한 복음의 내용입니다.
또 다른 천사 둘째가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합니다. 둘째 천사는 모든 나라로 음행을 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하게 만들었던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8절의 예고를 통해 복음의 천사 바로 뒤에 멸망의 천사가 따라온 사실입니다. 이는 복음의 양면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8절은 우리에게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그의 영향력에 의해 ‘진노의 포도주’를 먹게 될 자가 있을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매력적이고 편안을 주며 우리를 이롭게 하는 듯하나 그것은 잠깐이며 그들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먹이는 것은 바로 ‘진노의 포도주’인 것입니다.
셋째 천사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말합니다. 두 번째 천사가 예고한 바벨론의 멸망과 더불어 인간 각자에게 강력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곧 바벨론 짐승과 어울리는 자의 운명은 바벨론의 운명과 같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잔도 함께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운명을 같이 하며 영생을 얻을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합니다.
9~11절엔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당하게 될 멸망의 심판이 예고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진노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당하게 될 명망의 심판이 예고됩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셋째로, 그들은 쉼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고난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은 일시적으로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후 심판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위치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경배하던 바벨론, 짐승, 우상과 같이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12, 13절은 참된 안식을 누리는 자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이들은 짐승의 핍박과 유혹 속에서도 꾸준한 인내심을 보인자들입니다. 예수께 대하여 신실함을 유지한 성도들은 인내를 권고받을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의 죽음에 대한 축복을 보증 받습니다. 13절은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되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수고’란 피로를 느끼는 정도의 수고를 말합니다. 환난을 통한 성도들의 ‘수고’는 급기야 순고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죽음은 복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저주를 받는 불행을 당하지 않고 오히려 수고를 그치고 쉬는 복과 함께 행위에 따르는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열심히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자신을 순결하게 지키길 원합니다.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는 이웃을 향해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다. 내 삶을 온전히 주님의 권능으로 인쳐 주셔서 영원히 주님의 소유로 삼아주시고,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주시고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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