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꽈벼기 2019. 10. 18. 07:44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립보서 3:1~11)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 사상적 재무장을 강조합니다. 본문은 상당히 경직된 논쟁적 분위기로서 빌립보 교회를 위협하는 유대주의자들에 대하여 자신의 간증을 들어 그 허구성과 무가치성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거스른 자들(유대주의자)을 개들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치욕과 경멸의 대상을 질책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행악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들은 소위 사도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한다는 구실을 가지고 나타났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르고 복음을 파괴하며 하나님 은총의 섭리를 무시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항함으로 악을 행하는 자니 그들은 타락한 전도자요, 거짓 사도였습니다. 몸을 상해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자기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할례를 주장하면서 몸 일부를 베어버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주장합니다. 손 할례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변호합니다.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을 따라다니며 그의 사도직을 부인하고 복음을 파괴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대조하면서 사도직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자신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으로서 할례를 주장하는 그들과 비교할 때 못한 것이 없고 오히려 월등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새파 사람으로 열심히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인정받게 된다면 자신은 외형적으로 조금도 흠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누가 바울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볼 때 과거의 바울은 유대주의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울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이 되었거니와 육체적인 삶이 아니라 신령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즉 자신은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의롭다 함을 얻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구체적인 예로 들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바울은 여러 가지 육체적인 조건을 자랑삼았으나 하나님의 은총 앞에서 그것은 보잘것없는 것이며 오히려 복음에 방해가 되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바울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애는 이전의 인간적인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현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장차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영광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율법주의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형식적인 것과 세상의 것에 대해서 자랑하면서 참으로 자랑해야 하며 알아야 할 예수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닫고 세상적인 자랑들을 배설물로 여길 줄 아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서 과연 바울처럼 흥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군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부심을 느끼지 말고 정말 주님만으로 자부심을 느끼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