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꽈벼기 2019. 4. 8. 17:14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24:36~51)

 

36~44, 예수님의 재림을 도적의 침입에 비교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심장합니다. 먼저 예수님의 재림이 예측 불허하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침입할 날을 미리 알리고 집을 뚫고 들어가는 도적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주께서도 부지불식간에 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날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망각하고 세상일에만 몰두한 자들이 수치와 당혹함으로 극한 공포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중에는 주의 재림을 믿기는 하되 그 일이 까마득히 먼 장래에 발생할 것이므로 아직 시간적 여유가 넉넉하다는 태만한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주께는 천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항상 주님과 동거하며 이 말세에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상고하는 일에 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이 불신자들에게 큰 파멸을 가져다줍니다. 이 점에 관해 베드로는 본문의 말씀에 근거하여 마지막 날의 무서운 광경을 묘사하면서 성도들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날을 간절히 사모하도록 강력하게 권고하였습니다.

 

45~51, 인생의 성패는 선택에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자기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를 잘 활용하여 인생의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직무에 신실한 종입니다. 기회란 그렇게 자주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기회를 다시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를 한 번 상실함으로써 인생을 실패하게 된 사람은 자기 직무에 불신한 종입니다. 누구라도 자기 직무를 소홀히 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주께서 무슨 일을 맡겨 주셨든지 뒤로 미루지 말고 충실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뒤로 미루게 되면 나태해지고 그릇된 길로 빠져 불신실하게 살게 됩니다.

 

주님이 오시는 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신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며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늘 깨어 맡겨진 모든 직분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 주셨습니다. 선택을 잘하여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이 다가온 이때 깨어 있는 일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이 곧 자기 생명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명도 지키는 일입니다. 실로 우리는 주께서 오시는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하고, 세상이 노아 시대 이상 패역 하여 있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땅에 너무나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많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방증이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종은 잠시의 시간도 허송하지 않고 깨어 일하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 충성된 종입니다. 사실상 마지막 때를 알지 못하고, 세상이 악해서도 깨어 있어야 하지만 이런 참담한 세상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도 구속받은 성도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단과 그의 사주를 받는 온갖 세력들은 오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삼킬 자를 찾아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불신자를 곁에 두고서 우리가 할 일이 없는 양, 팔짱만 끼고서 잠들어 있다면 그 결과는 불충성한 자로 슬기롭지 못합니다.

 

현재 가정이나 교회에서 나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하길 원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언제 어떤 순간에 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믿음을 지키며 나아가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나의 오이코스를 위해 계속 힘을 써야 함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깨어 있는 종으로 불신자를 향한 열정이 꺼지지 않도록 마지막 때에 영혼 구원에 최선을 다하며 오이코스를 위해 기도하는 자 되길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