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느헤미야 8:1~18)
1~12절, 학사 에스라가 율법을 낭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하는 장면을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고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 왕국을 다스려 가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이 율법을 사모하는 모습을 기록한 1~5절, 율법을 듣고 깨달은 반응을 묘사한 6~12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백성에 대한 반응은 율법을 듣기 위한 백성들의 열심 1~3절에 나타나고 있고 율법에 대한 백성들의 경외심이 4~6절에, 율법에 대한 깨달음은 7, 8절에서, 깨달음으로 공동체의 회복이 9~12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흩어져 있던 백성들은 7월 1일에 모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종교력 7월은 중요한 달이었습니다. 7원은 민간력으로 신년 1월로서 그 첫날 나팔을 불어 송회를 선포하고, 10일은 대속죄일로 지켰으며, 또한 15일부터 한 주간은 초막절로 지키도록 규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본문의 7월은 성벽 수축을 마친날이 종교력 6월 25일 임을 생각할 때 이 사건이 재건 후 곧 발생한 일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시기는 더욱더 감격적이었을 것입니다.
모인 목적은 백성들은 성벽을 재건하고 이제는 영적 회복의 필료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7월의 성회로 모일 때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을 읽어 주길 요청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백성들은 율법을 듣고 깨닫게 됨으로써 언약 백성으로서의 신앙을 회복했습니다.
율법을 듣게 된 백성들은 레위인들의 도움으로 밝히 깨닫게 되었고 그 결과 가난한 자와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야 할 삶의 자태가 말씀을 듣고 즐겁게 순종하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그 백성을 다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확실하게 증명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주로 율법을 재해석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를 “씨 뿌리는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씨’ 곧 ‘말씀’이 전파되어 세워지고 다스려 진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말씀에 의한 통치’는 오순절 이후 초대 교회 당시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에 그 의미는 더욱더 확실해집니다.
13~18절, 율법에 언급된 초막절을 백성들이 준수하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3차 귀환 후 이스라엘 백성이 갖게 된 율법에 대한 열심을 초막절 규례의 준수와 관련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초막절 규례를 지키게 된 경위를 기록한 13~15절, 이 규례에 대한 철저한 준수의 모습을 담고 있는 16~18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본문을 발생한 사건별로 다시 구분해 보면 지도자들의 율법에 대한 열심 13절과 율법에서 발견된 초막절 규례 14, 15절, 규례에 따른 백성들의 준해 16~18절로 나눌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구조를 통하여 저자는 율법을 듣고 나타낸 반응을 규례의 순종이라는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저자는 초막절 준수라는 주제를 율법에 대한 반응이라는 외형적 표현 형태로 나타냄으로써 결국 이 사실은 바벨론 포로에서의 구원을 회상하고 기념하는 구원사적인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이해됩니다.
본문은 7월 둘째 날에 벌어진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규례상의 시기는 7월 15일입니다. 이처럼 시기상의 문제는 초막절 준비와 실행이라는 사실에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본문 7월 둘째 날부터 약 두 주간에 걸쳐서 준비를 하고 15일이 돼서야 초막절을 지키게 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7월 10일을 대속죄일로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사건에 대해 언급 하지않고 있습니다. 이는 본 장이 기쁨과 감사에 대한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기에 대속죄일의 행사가 지켜지긴 했으나 저자가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본문은 먼저 백성의 지도자들이 율법에서 규례에 대한 명령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본문의 사건이 지도자들의 열심에 의해 전개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초막을 준비하는 모습을 자세히 기록함으로써 백성들의 일치된 순종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농경 절기로서의 뜻, 즉 수확과 관련된 의미는 보이지 않고 오직 초막을 만들고 그 안에 거한 사실만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7일 동안 율법을 낭독한 에스라의 모습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본문을 출애굽과 연관시켜 바벨론 포로에서의 구원 역사를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러한 본문을 통해서 본서 저자는 출애굽 때에 전재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바벨론에서 재현된 사실을 백성들이 기억함으로 계속 되어질 언약 갱신으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데에 그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절기가나름대로 다 영적 의미 역시 지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장막 생활에 지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저 느헤미야 때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들 거처의 의미를 늘 성경에서 확인하고 장차 영원한 거처로 옮겨 갈 소망을 가지고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일은 감동입니다. 말씀 때문에 기뻐하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을 때 순종하며 뜻을 이루려고 합니다. 말씀으로 감동을 받길 원하며 성경 묵상을 통해 깨달음이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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