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태복음 12:1~13)
1~13절은 안식일에 대한 논쟁이 시작됩니다. 엿새 동안 수고한 심신을 쉬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 사역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며 신령한 영적 교제를 나누도록 마련된 안식일 제도는 하나님의 직접적 명령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안식일 준수는 십계명 중 제4계명에 해당하며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사형에 처했을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의 참된 뜻보다는 그 형식적 준수 자체에 더욱 골몰한 나머지 온갖 금지 규례들을 문자적으로 지키기 위해 힘을 낭비하였습니다. 본문에서도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일한 것으로 단정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제자들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일축하기 위해 예수님은 사무엘상 21:1~6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율법 준수에 철저히 하노라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의 허상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율법상의 규례로써 반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삭이 아니라 진설병, 곧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던 진설병을 다윗이 먹었던 사실을 지적하심으로써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예수님을 ‘성전보다 더 큰 이’ ‘안식일의 주인’ 등으로 언급하심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진리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전보다 더 큰 이를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이를 알지 못함이 큰 불행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라는 주님의 뜻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비방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희생시켜 사람을 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제사라는 의식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뜻을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안식일을 주시고 지키라 하심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고 또한 거룩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입니다. 이것을 형식과 외식에 얽매이지 말아야겠습니다.
9~13절은 안식일 날이라도 생명을 귀중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은 사람의 생명을 귀중히 보시며, 유대인들은 율법의 규칙을 중히 여기며 얽매여 인간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인간의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을 이긴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시며 한쪽 손 마른 환자를 손을 내밀게 하셔서 고쳐 주십니다. 순종하며 주님께 내어 맡기는 손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맡길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그의 말씀과 그의 행위로써 그리스도임을 나타내서 잃어버린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율법주의에 메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경건한 생활을 위한 규범 자체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율법이나 규범을 주안에서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고 지키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가르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규범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또한 신앙을 핑계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무시하는 일이 없었는지도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과 이웃을 먼저 생각하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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