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꽈벼기 2019. 1. 12. 08:52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0~121)

 

1~2, 1절에서 다윗은 고난 중에서 기도하여 응답받은 과거의 체험을 회상하면서 현재 직면하고 있는 환난 중에서도 기도해야 할 동기를 발견합니다. 그는 환난이나 곤고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 자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만나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기 시작한 사람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시고 지속해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다윗은 부당한 취급을 받는 현실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간곡하게 구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3~4,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한 대목에 이어지는 본연에서 다윗은 자신이 당한 환난의 구체적 내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원수들로부터 거짓된 비방을 당했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중상모략 했던 죄에 대하여 자기의 무죄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은 무죄한 자를 괴롭히고 있는 악인들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하여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날카로운 화살이 인체에 꽂힘과 같이 악한 일을 꾀한다고 합니다. 또한, 악인들의 비방이 다른 나무로 된 숯불보다 더 쉽게 불이 붙고 더 뜨겁고 가장 오래 타는 로뎀나무 숯불처럼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비방자들의 혀는 지속적으로 타오르는 불길처럼 치명적인 해독을 가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악인들이 언어폭력에 대하여 고발하면서 이러한 악한 혀의 소유자가 받을 화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악한 말로써 남에게 치명상을 주는 행악자는 필연적으로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설의적인 진술입니다. 즉 다윗은 악한 말을 하여 남을 죽이는 악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5~7, 다윗은 여기에서 자신의 고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그는 이 사악한 자들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그가 이러한 행악자들 가운데 살게 되었음을 드러낼 뿐입니다. 다윗은 그들이 메섹게달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메섹에 거하는 자들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거주하는 종족이었고, 게달에 거하는 자들은 아라비아의 유목민입니다. 이 두 종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이 종족들 속에 저자가 함께 있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는 단순히 거칠고 적의에 가득한 대적들을 비유해서 이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윗은 야만족들과 같은 악한 버릇을 가지고 있는 대적 중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은 호전적인 족속들이 자신의 진심을 왜곡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평화를 몹시 사랑하고 그의 영혼에 평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데 비하여 사악한 자들은 자신의 진실을 수용하지 않고 반대로 다툼을 일으키려 한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위하여 소리 지르며 적대적인 행위를 표출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자는 그의 마음속에 평화를 간직하고 있었고, 또한 그들과 화평 하고자 애섰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희생적인 노력은 무산되고 본시는 평화를 바라는 저자의 소망과 싸움을 원하는 대적들의 불협화음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확신하며 노래합니다.

 

1211~2, 지금 시인은 예루살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2절에서 독백의 형식으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라고 주어집니다. 시인은 순례자를 여행 중에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분은 오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하십니다. 시인은 다른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고 오직 참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3~4, 유일한 도움의 근원이 하나님뿐임을 표현한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서는 어떤 위험도 성도들에게 미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완벽하게 보호하시는 분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보호자가 되시므로 그들은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시인은 한순간의 방심이나 실수도 없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인화하여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분은 불꽃같은 눈으로 성도들을 돌보시고 모든 위협으로부터 온전히 보호하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보호 결과로 드러나는 안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5절에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에 관한 설명을 자기 자신에게까지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여호와가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오른쪽이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힘 있게 보호하심을 나타내고, 성도가 하나님을 찾으러 멀리 갈 필요가 없음을 밟힙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늘 성도들 가까이서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늘이 해로운 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는 성도를 외부의 여러 위험으로부터 막아줍니다.

 

시인은 6절에서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자신을 해치 아니할 것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시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의 재해로부터 그를 보호하십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시인은 본 시에서 이스라엘의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발견한 하나님의 보호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하심으로써 시인의 영혼을 지키실 것입니다. 여기서 영혼을 지키신다는 말은 내적, 외적으로 그의 생명을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지키실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출입이라는 말은 사업이나 교제 등과 같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을 눈여겨 둘러보십시오. 온갖 행악과 악담에 깊은 상처를 받고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입에서 악담을 담아서도 안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악담도 특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신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기록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자상하게 보살펴 주고 계신가를 증언한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까닭 없이 고통당할 때가 있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길 원합니다. 나는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어려운 처지에서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을 믿으며 인생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