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구원이 되셨도다]

꽈벼기 2018. 12. 28. 07:48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구원이 되셨도다]

(시편 118:14~29)

 

14~18,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징계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인자로써 계획적으로 고난을 부여하셨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고통은 거룩하심을 증진하려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예비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고난의 예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격렬한 대적들의 공격을 막으시고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 대해 죽은 자 같으나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확신 있게 증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영원히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심한 경책을 받을 때 절대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되며 생명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신뢰하고 그분의 힘을 의지하며 어두움의 권세가 철저히 파멸될 완성의 날을 대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오른손으로 공의로운 판결을 집행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리시고 구원의 행사를 선포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시인의 남은 생애는 하나님의 자비와 권세를 선포하며 찬양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19~29, 메시아의 고난과 영광에 대한 현격한 예언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의 몇 구절은 4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수난 기사에 예외 없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모퉁이 돌이 되기 위해 버림을 받아야 하는 그리스도의 운명과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호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미리 노래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기를 희망합니다. 여기에서의 문은 의의 문이며, ‘여호와의 문으로서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의인들만이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문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오면 이 문은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양의 문입니다.

 

22절은 메시아는 건축자가 버린 돌로 묘사됩니다. 메시아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성육신하여 세상에 임하셨지만, 유대인의 지도자와 군중들에 의해 철저하게 버림받았습니다. 수치와 죽음 가운데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리의 근거를 확보하셨습니다. 결국 메시아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따내온 돌로서 영적인 성전의 기초를 쌓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메시아는 이제 버린 돌에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십니다. 그를 기초로 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되어 하나의 거룩한 건축물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신앙의 창시자요 완성자로서 탁월한 위치를 점유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인생의 희망의 근거요 연합의 중심이며 목표로 삼으셨습니다. 이러한 메시아의 높아짐은 부활과 승천과 성령 강림으로 확증됩니다.

 

시인은 구원의 영광을 찬미하며 기뻐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구원의 날을 기쁨으로 지키는 끊임없는 축제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버림당한 돌이 존귀하게 높여지는 안식을 기념하며 축하합니다. 이어서 높임받는 구속자를 행해 호산나 찬송을 외치며 영접하고 따르리라고 말합니다. 왕의 대관식 때 그의 백성들이 환호하는 것처럼 메시아의 등극은 만족과 영광과 애호로서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공공연히 입성하실 때 백성들은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깔며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여호와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축복을 확신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마음속에 늘 기쁨이 넘치길 원합니다.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하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