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 더미를 쓸어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버릴지라]
(열왕기상 14:1~20)
불순종의 길을 가던 여로보암이 마침내 일족 파멸의 심판을 선고받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본 단락은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각각 본 단락이 주고자 하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의미의 요소들을 추적하게 되면 본 단락이 주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먼저 본 단락의 특징은 등장인물, 요소의 의미 변환입니다. 즉 본문에서 여로보암의 병든 아들의 운명은 단순한 인간사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배후에서 주관하시고 역사하신 섭리였던 것으로 의미가 뒤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아내는 속이는 자의 심부름꾼에서 진실의 전달자로 바뀝니다.
또한, 아히야는 늙고 눈먼 자이지만 젊고 영악한 자보다 더 먼 미래를 밝힐 수 있는 하나님 선지자였음이 드러납니다. 더욱이 무엇보다 여로보암은 자신을 감추기에 급급했지만, 자신이 모르던 운명까지도 마침내 낱낱이 폭로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상과 같은 ‘전환’과 ‘폭로’는 원래 그럴 수 없는 것이 그렇게 바뀐, 즉 불가능의 가능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늙고 앞 못 보는 노인이 젊고 영리한 자의 술책을 뛰어넘어 오히려 그가 모르던 사실까지 일러준다는 기막힌 역전입니다. 당연히 이러한 요소는 등장인물이나 인간적 상황을 초월하는 어떤 힘으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입니다. 따라서 이런 점을 감지한다는 것은 신성하지 않는 풍토 속에서 인간적 계산에만 영악해진 현대인들에게 참신한 도전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우둔하기 짝이 없는 여로보암을 거울삼아 자신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 대하여 얼마나 무지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이가 곧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고서 다만 선지자 아히야의 눈을 속이려 들었습니다.
또한, 여로보암은 자기 아들의 병의 원인은 생각하지 않고 그 결과에만 집착한 자입니다. 사실 환난에 직면할 때 먼저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신자의 마땅한 자세가 아닌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끝끝내 완패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상과는 대조적으로 선지자 아히야의 담대한 신상은 참으로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줍니다. 여로보암이 자신의 아내더러 아히야 앞에서 신분을 감추라고 말한 점으로 보아 아마도 아히야는 여로보암으로부터 여러 번 회유나 협박을 받은 듯합니다. 그러나 아히야는 그 같은 압력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신앙과 위치를 지켰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하여 여로보암 가문을 향하여 극렬한 심판을 예고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가면을 교묘히 쓸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알아보시고 그 패역한 마음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우연’이나 ‘만일’이란 단어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진정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따라 진행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거나 형식적인 면만을 치중하는 가면 쓴 신앙인의 모습을 버리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또한, 하나니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될까보다 어떻게 행할까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기 원합니다. 주님이 항상 나의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이 두려움이 됩니다. 주님 앞에 늘 정결한 심령으로 바로 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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