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꽈벼기 2017. 4. 9. 07:13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한복음 18:1~11)

 

여기에서는 공관복음의 공통된 기록인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유다가 이미 알고 있는 동산으로 자진해서 찾아가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유다가 다락방에서 자신의 체포를 둘러싸고 제사장들과 흥정을 하러 갔음을 익히 알고 있었고, 다시 유다가 군대를 이끌고 그들의 사랑방과 같은 곳인 겟세마네 동산에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사이에 충분히 피신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미 아시고 스스로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신 것은 예수의 자발적인 순종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수난의 능동적인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예수의 수난에 대한 자발성은 체포 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의 신분을 재차 밝힘으로써, 오히려 적들을 당황하게 하였음을 강조합니다. 요한의 증거에 따르면 무력을 동원한 군대의 위엄은 하늘의 권세 지닌 예수의 위엄 앞에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자발적인 체포를 무력으로써 제지하는 베드로를 자제시키셨습니다. 베드로의 무력 행동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속 계획을 방해하는 사단의 방해 공작과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 신앙 상태를 함축한 것은 무지와 오지입니다. 대표적으로 베드로와 유다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이 예수의 사역에 무지했기 때문에 유발된 만용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예수에 대한 충성에 기인한 것인 한, 유다의 불신앙과는 구분됩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만류한 베드로를 향해 꾸짖으시고 베드로의 이런 행위는 사람의 일만 도모하는 사단의 책략임을 분명히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만찬 때 보인 베드로의 과신은 진리에 대한 무지한 자의 식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은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유다의 배반은 오지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사역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함에서 오는 무모한 만용을 부렸다고 한다면 유다는 예수의 사역을 일면 정확히 파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예수의 사역 성격을 누구보다 정확히 간파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예수에 대한 지식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지만 전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명백히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는 적극적인 불신앙의 상태 즉 오지의 불신앙이라는 극단적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자신을 내어 맡기어 순종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칼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길을 막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무지와 유다의 무 사유라는 두 가지 불신앙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린 베드로의 무지에서 벗어나고 유다의 생각 없는 처세를 탓하기 전에 진리에 부합되는 진지한 영적 분별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의 신앙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를 흔들고, 뒤엎고 초조하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처럼 아버지께 기도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더럽고 악한 나의 마음을 정하게 하셔서 흠 없는 삶을 이루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