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몸보다도 훨씬 가벼운
문짝 하나 없는
껍질뿐인 집을 이고
흡사
팽이가 팽팽 돌다가 쓰러져
오래 잠드는 것처럼
오늘 밤도 느릿느릿 달팽이는 기어서
어느 꽃그늘 아래 잠드는가
--박정남--
이불과 몇 가지의 옷을 들고 다니는 노숙인을 본 적 많다. 큰 다리 아래서, 소공원 벤치에서, 지하도에서, 그들의 깡마르고 검은 얼굴에 흐르는 불안을 본 적 많다.
이 시는 한뎃잠을 자는 사람을 달팽이에 비유했다. 가욱을 머리 위에 보따리처럼 이고 다니고 있다. 열고 들어설 문짝도 없는 빈 껍데기의 집이다. 팽이가 아찔하게 돌다 쓰러지듯이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 든다. 꽃그늘이 드리워진 곳에서.
이 생기 없는 노숙자의 초상은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정처 없이 유랑하고, 가파른 생의 비탈에서 두글두글 굴러 내린다. 우리의 영혼은 사랑과 이해라는 집채의 바깥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노숙한다.
--문태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