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노숙

꽈벼기 2014. 7. 7. 09:57

노숙

 

몸보다도 훨씬 가벼운

 

문짝 하나 없는

껍질뿐인 집을 이고

 

흡사

팽이가 팽팽 돌다가 쓰러져

오래 잠드는 것처럼

 

오늘 밤도 느릿느릿 달팽이는 기어서

어느 꽃그늘 아래 잠드는가

 

                      --박정남--

 

이불과 몇 가지의 옷을 들고 다니는 노숙인을 본 적 많다. 큰 다리 아래서, 소공원 벤치에서, 지하도에서, 그들의 깡마르고 검은 얼굴에 흐르는 불안을 본 적 많다.

 

이 시는 한뎃잠을 자는 사람을 달팽이에 비유했다. 가욱을 머리 위에 보따리처럼 이고 다니고 있다. 열고 들어설 문짝도 없는 빈 껍데기의 집이다. 팽이가 아찔하게 돌다 쓰러지듯이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 든다. 꽃그늘이 드리워진 곳에서.

 

이 생기 없는 노숙자의 초상은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정처 없이 유랑하고, 가파른 생의 비탈에서 두글두글 굴러 내린다. 우리의 영혼은 사랑과 이해라는 집채의 바깥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노숙한다.

                                                                                                  --문태인 시인--

 

'가슴으로 읽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졸陋拙  (0) 2014.08.02
침묵을 들추다  (0) 2014.07.25
들녘  (0) 2014.06.24
빈 산  (0) 2014.06.19
사랑 2.0  (0) 2014.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