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 헨리 조지 지음 / 김윤상 옮김 / 경북대학교출판부 / 211쪽 / 1만 원
서평 이벤트 신청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 제목부터가 나에겐 상당히 어두움으로 다가왔다. 읽는 동안 나는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지루했고 덮었다 읽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허우적거리기가 일쑤였고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나면 온몸이 쑤셨다.

어쨌든 페이스 북에 이 책이 추첨되어 서평을 쓰게 되었다고 표지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댓글이 올라와 나름대로 책의 의미를 전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헨리 조지가 미국인으로 경제학자라고 하며 유명하다는 둥 그분이 지은 책 가운데 <진보와 빈곤>이 유명하다는 둥 많은 정보를 전해 주었다.

다소 좀 알고 읽는 것이 좋겠다 싶어 정보를 검색했다. 저자와 그때의 배경 자료를 찾았다. 헨리 조지의 어릴 때 삶은 고달팠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책만은 많이 읽었다고 한다. 점원, 선원, 그 외 많은 직업을 거쳐 인쇄소에 다닐 때 결혼했다. 26세가 되던 때 링컨 대통령의 암살 소식을 접하고 분노한다. 그러다가 인쇄공으로 있던 신문사에 글을 투고한다. 그 글이 기사가 되어 인정받고 기자로 일하다 강의까지 하는 그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고 노동자의 빈곤을 뼈저리게 경험한 이때 <진보와 빈곤>이라는 책을 쓰고 대단한 인기를 얻는다.

토지단일세를 주장한 토지 개혁가이기도 한 그는 다른 세금을 철폐하고 단순한 토지 임대로부터 얻은 모든 경제적 지대에 대하여 단일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자의 빈곤이 극심해지던 19세기 말, 교황 레오 13세가 '새로운 사태'라고 불리는 유명한 '회칙'을 1891년에 발표하고 몇 달 후에 헨리 조지가 이에 대한 반론으로 '공개서한'을 발표한 것이 <노동빈곤과 토지 정의>이다.

'회칙'은 노동문제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취한 가톨릭의 대표적인 회칙이며 이를 발표한 교황 레오 13세는 역대 교황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황으로 평가를 받고 헨리 조지는 당시 노동 빈곤 문제에 관해 마르크스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로서 '회칙'이 제시하는 해결책보다 토지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 더 근본적이라고 역설하고 있다(추천사에서).

'회칙'을 '새로운 사태' 혹은 '노동 헌장'이라고도 한다. 사회문제에 대하여 종교가 그 사명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것이 사회 교리가 되었고 열악한 노동의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헨리 조지는 그 해결책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공개서한'을 발표한다. 노동자의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도 정답이 아니지만 '회칙' 역시 정답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 지대조세제가 어떤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농촌 토지와 도시 토지를 막론하고 모든 토지에 대해 1년간의 토지 사용료인 지대를 매년 토지 소유자에게서 징수하여 최우선적 정부 수입으로 삼는 제도이다. 한마디로 토지 사유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경제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나는 엔지니어 노동자로 한참 직장 생활을 하다가 때가 되어 홀로 사업을 시작했으며 나중엔 토지를 구입하여 공장을 지어 노동자를 거느리며 일을 해 왔다. 경제를 알고 사업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동자들이 어떤 면에서는 사업주보다 나을 때가 많다. 집을 구입하고 자동차도 굴린다. 자녀들을 교육시키고 착실하게 일만 하면 중류층 이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사업주가 제때 임금을 못 주거나 하면 노동청으로부터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그들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사회적 변혁을 위해 해마다 투쟁을 한다. 점차 옛날의 모순이 사라지고 노동 빈곤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사실 대기업의 노동자들과 화이트칼라의 직업은 막강한 부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작은 공장의 노동자들은 힘들기도 하고 임금도 적다. 이들은 큰소리도 못 친다.

아무리 나라가 부하고 강하다고 해도 소외 계층은 있기 마련이다. 헐벗고 굶주리는 최말단 계층을 위해 많은 복지가 생겨나고 그들을 도우고 있는 기관과 단체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답시고 일하는 것이 진보다. 정작 이들을 위해 일하는 곳은 종교 단체들이다.

우리나라는 산업 부흥이 일어날 때 땅을 가진 지주들은 많은 돈을 모았다. 농토가 황금으로 바뀌는 놀라운 시절도 있었다. 이런 일들을 미리 예측하여 헨리 조지는 그 당시 지대조세제를 외쳤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자니 앞뒤가 잘 맞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대로 하면 부족함이 없도록 창조하셨는데 그 의도를 저버리고 인간의 생각대로 노동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하면 사회주의 문제가 불거지게 되고 하나님이 만드신 토지에 대한 반발이 깊게 패이게 되었다.

교황 레오 13세는 토지를 사유 재산권으로 인정하고, 헨리 조지는 이를 반대하는 쪽이었다. 그렇더라도 결국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사실 사회주의가 이것으로 꿈틀거렸고 시대 상황에 따라 영향력을 더해 주고 있었다. 이 책은 이런 사항들을 더 자세히 풀어 가기 위해 부록 4에 '회칙'까지 실어 이해를 돕고 있다.

회칙의 목적은 그 당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지주로부터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토지의 개념을 달리 세웠으리라 본다. 하지만 헨리 조지의 주장은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도 아니고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공유하자는 것이고 노동의 결과인 임금은 사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토지권을 보장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며 시장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오히려 자유 지상주의를 부르짖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이 우리나라 토지 정책과 노동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는지가 나에게는 관심거리가 되었지만 결국 아리송하다는 것밖에는 모르겠다.

또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적용시켜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하는 것이다. 막연하게 부동산 경기와 빈곤 노동자들의 문제가 이 책에서 무엇을 해결해 줄 것인지 내가 아는 세상 지식으로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 답답함을 더해 준다. 지금의 경제문제에 상식으로 뛰어들기는 무리인 것 같다. 19세기의 논제가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적용시켜 부합시킬지 전문가들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부동산 경기 문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고 금리와 내수 불경기와 유럽의 경제 사정들이 우리의 경제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서민들의 가계가 힘들어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경제는 역시 어려운 일인가 보다. 주택 가격은 내려가고 시장바구니가 가벼워지는 이때 이 책이 주는 의미는 한낮 그 시대에 있었던 경제 이론이 사회주의의 형성에 빌미를 제공한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