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7:53~8:20)
53~8:11절, 유대교 지도자들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인 예수를 어떻게 해서든지 체포할 충분한 증거를 얻고자 올무를 놓습니다. 그들의 올무는 정치적, 종교적, 함정이 깔린 간교한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며, 예수를 율법의 파괴자요, 하나님의 왕권을 침해하는 죄인으로 몰아넣으려는 합니다.
이러한 음모가 구체화 된 것이 바로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께 끌고 온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키면 여자뿐 아니라 남자까지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자만을 예수께로 끌고 왔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예수 제거 음모에는 모순점이 있었으나 예수를 궁지에 빠뜨릴 수 있는 상황은 충분히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함정은 예수가 여인을 용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율법의 권위와 가치를 무시하게 되거나 여인에게 죽음을 선고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의 메시지를 포기하게 되는 데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원칙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음으로 예수의 사형 선고는 로마 총독의 권한 침해라는 구실로 그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모든 죄인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힘쓰신 예수이시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오히려 예수를 죽이려고 갖은 음모와 계책을 감행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눈은 어두움에 가려져 있었으므로 진리에 대해 무지한 영적 소경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악의에 찬 공격에 대해 처음 순간에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침묵의 시간 동안 두 차례 손가락으로 땅 위에 무언가를 쓰시고 그때마다 판결의 말씀을 내리십니다. 두 번이나 반복되는 예수의 글 쓰는 행위는 그들의 공격적인 시선과 흥분한 분위기를 완화하는 작용을 했습니다.
첫 번째 글 쓰는 행위 다음에 내려진 예수의 판결은 죄 없는 자가 돌로 쳐 죽이라는 법의 집행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증인이 먼저 죄인에게 손을 대 그를 죽게 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법에 따라 처형을 하되 처형하는 자 스스로가 죄 없는 자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일 없이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 글 쓰는 행위 다음에 내려진 예수의 판결 말씀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사죄의 선언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예수와 여인과의 대화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뜻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여인을 용서받고 자유로워야 할 소중한 생명체로 보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의 말씀은 예수께 질문을 던졌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그들로 자기들의 정체를 의식하게 하고 스스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율법의 본질은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해주어 의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여인을 향하여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전제하에 사죄를 선언하는데, 이는 예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닛 분임을 잘 말해 줍니다. 또한, 예수께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변화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2~20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초월적 이미지가 강하게 주목받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세계에 속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을 역시 빛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곧 예수의 인격 안에서 신적인 빛이 세상에 보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세상에 속한 자들과 구별되어 대립할 수밖에 없었으니 계속되는 논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자기 선언은 본질에서 계시에 대한 무지와 죄악과 어두움과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영적 싸움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멸망을 초래하는 심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빛 가운데 거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빛을 세상에 반사 시켜 어두움에 거하는 사람들이 그 빛을 따르도록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빛은 세 가지 영적인 작용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밝혀 주어 알게 합니다. 그것도 계시를 말입니다. 두 번째로, 구원하여 줌과 세 번째로 깨끗하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결의 의미겠지요. 어두운 가운데서 빛만을 따르는 것과 같은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 밖의 다른 곳은 어두움만 가득한 줄 확신하고 전적으로 그분만을 의지하고 따라갑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빛이고 세상은 어둠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따른다"는 말은 신앙의 방향을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어두움은 무지와 죄의 불행을 모두 가리키는 비유입니다.
생명의 빛이란 것은 생명에서 나는 빛 곧 하나님과 사귄 생명에서 나는 빛으로서 우리의 지능을 밝게 하여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을 주는 빛이라고 해석합니다. 빛은 진리를 알도록 인도하고 진리는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바리새인들의 힐난하는 말은 모순덩어리입니다. 그들은 빛의 성질을 모릅니다. 빛은 다른 것의 증거를 요구하지 않고 직접 자체의 밝음을 나타냄으로 그 빛 된 사실을 성립시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높은 지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는 자기가 친히 자기를 증명하심으로만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빛과 같은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남들을 외모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므로 판단, 즉 심판 하시지 않습니다. 그는 누구든지 그때 판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은 일반인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취지에서 그들을 판단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판단하심을 가리킵니다. 그가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하여 판단하시며 증명하실지라도 그 증거는 참되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 증거는 그와 그를 보내신 이, 즉 하나님 아버지가 합하여 나타내시는 유력한 두 증인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증인의 증거가 사실을 여기에 지적하고 자기에게 대한 이런 이중의 증거자들이 계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아버지의 증언은 성경의 증거를 가리킵니다. 여기 이 구절을 보아서는 신약에 사용된 "증거" 혹은 "증인"이란 말이 법정의 증거 원칙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관한 증인이 두 분인 사실은 유대인의 율법에 근거하여 논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아버지 곧, 참 하나님을 모르는 처지에서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라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원인은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 드리지 않음, 즉 믿지 않음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죄로 인해 무리 앞에 끌려온 여인처럼 새벽을 기다릴 희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위에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돌아가신 주님은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용서로 어두운 밤에서 힘찬 새날의 새벽을 맞게 된 여인이 무한한 기쁨과 감사로 새 출발을 내디뎠듯이 우리도 과거의 죄에서 돌이켜 주님을 만나게 되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삶으로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민감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신실하게 정직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우리를 올무에 빠뜨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시험의 때에 주님께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지혜를 구합니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가길 원하며 나를 속이며 해롭게 한 자를 정죄하고 냉담함과 인색함으로 불평하는 마음을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대로 따르기를 원합니다. 한 생명이라도 더 주임을 만날 수 있도록 세월을 아끼며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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