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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텐 로드 바투길

꽈벼기 2012. 7. 2. 14:09

문텐 로드 바투길

추석 연후 삼일 째 되던 날 아침 아내는 미장원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왔다.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집에 머물 수가 없어 모처럼 나들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언뜻 떠오르는 것은 영화 구경이었다. 오랜만에 권해 보는 나의 배려이었다.

 "오늘 한 프로 어때?"

 "극장에 볼 만한 것이 없을 걸요." 아내는 이미 볼 것이 없음을 미리 알고 대답했다. 사실 인터넷을 뒤져 볼만한 영화 프로를 찾아보았더니 정작 우리 부부가 볼 만한 영화는 없었다.

 "그럼 오늘 뭐하지?" 하고 다시 물었다. 미리 생각해 놓은 듯 "오늘 멋진데서 데이트나 합시다." 거울을 보고 얼굴 화장을 고치며 작심한 듯 말한다. "어디 좋은 데 있나?" 되물었다. "멀리도 말고 해운대 달맞이 길로 갑시다." 마음속에 미리 정한 모양이다. 그곳은 바다를 바라보며 분위기로 차 마시고 식사하는 곳이다. 연인들이 즐기는 곳에 60대 중반의 나이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조금은 쭈굴스럽다는 생각에서 “늙은 게 거기 가면 어울리나” 하고 못마땅하다는 인상을 하고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아내는 못가 본 새로운 올레길 같은 걷는 곳을 마음에 두고 설명을 한다.

  "그 길 당신하고 걷고 싶었는데 오늘 한번 가 봅시다." 말을 듣고 난 뒤 아무리 생각해도 산책할 그런 곳이 달맞이에 있다는 것은 나에겐 상상 조차 되지 않았다. 마음에 소원을 담고 이야기하듯 해서 그 말을 들어주기로 하고 해운대로 향했다.

  사실 해운대 달맞이 길에 바다 옆 철둑길 위로 이런 길이 있었다는 것은 부산에 살면서도 몰랐다, 언제부터 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만 철저히 외면당한 부산시민이 되었다. 막상 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길들이 단단히 매끄럽게 잘 다져져 있었다.

  아내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함께 이곳을 산보한 적이 있어 미리 잘 알고 있었다. 그 마음속에는 언젠가 좋은 날 남편과 단 둘이 꼭 걷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 아내의 얼굴은 밝아 있었다.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보면 나에게 불만을 토할 것 같아 약간 마음이 상기되어 아내의 눈치만 보았다.

  소나무 숲 사이로 바다가 출렁이고 있는 것이 새롭게 보였고 길은 소나무 가느다란 잎이 낙엽인양 떨어져 바닥에 제법 쌓여 있었다. 숲속의 싸늘한 공기는 제법 가을이 되어 오는 새 색시로 마음에 달라붙는다. 두 사람이 걸으면 좋을 오솔길, 양옆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을 이루고 있지만 그 윗길은 차들이 달리고 밑으로는 두 줄로 깔린 기찻길이 보인다.

  이 기찻길도 오래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 동해 남부선의 복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고 완성되면 다른 곳으로 옮겨 운행된다고 한다. 이 철길 아래로 햇빛이 파도에 밀려 반짝이며 멀리 태양까지 닿고 있었다. 비록 달이 빛나는 저녁이 아닐지라도 한낮에 눈부실 금빛 태양의 그림자가 바다위에서 내 옆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 길의 전장은 약 5km. 왕복 10km이다. 시간적으로는 천천히 연인끼리 왕복으로 걸으면 약 3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이다. 좁은 올레길 같은 길은 약간의 굴곡은 있으나 그리 경사가 많은 곳은 아니었다. 우선 처음 온 길이라 나에게는 기분이 좋았다. 숲이 우거져 밖이 잘 보이지 않으니 깊은 산중처럼 느껴진다. 낮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그다지 없었다.

  우린 말없이 한동안 걸으며 주위의 환경을 만끽하면서 새로운 공기를 들이쉬고 있었다. 내 아내도 말이 없다. 그냥 "좋지요?" 하고 물어본다. "언제 만들었지? 전에는 이런 것이 없었는데"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혀 나들이를 하지 않는 나에게 분위기를 위한 정보는 애초부터 상상도 못할 재미없고 무뚝뚝한 그런 기가 막힌 남자 였다. 그러나 쓸쓸 좋아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왔을 때 앞의 팻말을 보고 멈춰 섰다. 그곳에는 '문텐 로드 바투길'이라 적혀 있었다. 바투란 '두 대상이 아주 썩 가깝게'라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함께 적혀 있었다. 마음이 움찔했다. 그 누구보다도 가깝다는 부부인데도 우리는 경상도 남자와 이북 여자 사이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가까운 사이일까, 먼 사이일까. 사실 없으면 못 사는 사이인데도 우리는 별 이야기 없이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냥 말없이 걷는 거였다. 팻말의 내용이 머리를 때리며 마음에 걸려 먹구름이 모이기 시작한다.

  손 한번 잡아 보고 싶었지만 머쓱한 마음 때문에 결국 잡지 못했다. "여보 당신 사랑해요"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결코 그 말도 끄집어 내지 못했다. 대입 준비 중인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시집보낼 딸 이야기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린 말이 없었다. 평소 관심사는 많았지만 소통은 원활하지 못하였다.

  그저 긴 문텐 로드를 걷는 것이 바쁜 듯 머리를 땅에 처박고 혼자 열심히 걸었다. 자연 속의 공기와 주위의 나무들을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며 기분에만 도취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산티아고로 간 서영은과 치타 사이에 여행 중 골이 패인 것처럼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따라오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옆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또 떨어져 있었다. 몇 번을 이렇게 반복하다가 다시 중간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와 주차장까지 오게 되어 함께 차를 탔다. 아내는 "어디 조용한 찻집에서 차 한 잔하고 가요"라고 한다. "저녁에 교회 가야 되잖아" 하고 집으로 갈 것을 재촉했다. 금요 철야 기도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송정터널로 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사실 차 한잔할 시간은 있었지만 예감에 이야기가 길어지면 싸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피하기 위해 고집스레 교회로 갔다. 사실 우리는 무슨 꼬투리가 잡히면 종종 싸웠다. 무언가 잘못 된 것 같아 철야 기도회시간에 기도가 힘들었다. 아내의 원대로 멋진 데이트가 되지 못해 찝찝한 마음이 정신적 충격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완전히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감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얼굴을 쳐다보니 평소의 표정과 사뭇 달라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린 조용히 잠자리에 드는 듯 했다. 말없이 천정을 바라보고 잠을 청하는 순간 아내는 나를 발로 차면서 밀어내고 옆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 전쟁은 이제야 시작되었다. 아내는 울면서 나를 “나쁜 놈”이라 했다. "혼자 가고, 손도 한번 안 잡아 주고, 관심도 없는 남편, 내 남편 맞나?" "저리 가라." " 원수야." 발로 차인 나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순간 아무 대답도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실패였다는 사실을 미리 안 나는 미안하다는 감정을 숨길 수 없어 머리에 쇠망치가 닿은 듯 했다.

  36년을 같이 살아온 부부이지만 모처럼 벼르고 만든 함께 한 좋은 날, 좋은 시간을 내 아내는 나의 행위에 깊은 트라우마가 생겼는가 보다. 어쩌다 한번 받고 싶은 관심을 무뚝뚝하게 내동댕이친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다시 한 번 바투의 의미를 깊이 되새기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나의 마지막 말은 변명에 불과했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정말 사랑한다고…."이렇게 말로 때워 보지만 이미 상한 마음을 달래기란 쉽지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 설거지는 내가 했다.

 

2011.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