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아카시아

꽈벼기 2014. 5. 24. 20:46

아카시아

 

먼 별에서 향기는 오나

그 별에서 두마리 순한 짐승으로

우리 뒹굴던 날이 있기는 했나

나는 기억 안 나네

아카시아

 

허기진 이마여

정맥이 파르랗던 손등

두고 온 고향의 막내누이여

 

                  --김사인--

 

봄바람 속에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하다. 아카시아 꽃은 이삭 같고, 원뿔 같고, 흰쌀밥 한 덩이 같다. 꽃이 활짝 피어 나무 전체가 전등을 켠듯 환하다. 아카시아는 벌이 꿀을 빨아 오는 밀원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카시아 꽃을 따먹던 날이 있었다. 배고픈 때가 많았다. 얼굴에 궁기가 흐르던 때였다. 이 시에도 가난의 기억이 배어 있다. 창백하고 허약한 막내  누이가 아카시아 꽃에 빗대어져 있다. 아카시아 꽃을 보면서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하얗고, 손등에는 정맥이 파르르 내비치던 막내 누이를 간절하게 떠올리고 있다. 이 시를 읽은 후에 아카시아 꽃을 다시 보니 정말 저꽃 속에는 핏기가 없는 핼쑥한 얼굴이 하나 들어 있다.

                                                                             --문태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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