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쓸쓸한 화석

꽈벼기 2013. 1. 24. 07:14

쓸쓸한 화석

 

겨울비 내린 뒤

언 땅 위에 새겨진

어지러운 발자국

발자국 위에 또 발자국

뉘 집 창문 앞일까?

 

결코 놓칠 수 없었던,

끝까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던,

그러다 끝내

서로에게 스미지 못하고 뒤엉켜버린

순대 같은

아니 식은 떡볶음 같은

저 지독한 사랑의 흔적

 

그 진창의 발자국 속에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한 말들이

살얼음처럼 간략하게

그러나 서로를,

힘껏 당기고 있다

밟아봐, 얼음 깨지는 소리, 경쾌하지?

 

들어봐라,

내 생각엔

이 근처 어딘가에 그들의 무덤이 있다

 

                 - 이창기-

 

겨울의 몀물 중 하나는 눈 녹은 진창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그게 무슨 명물이냐고?), 날씨가 잠시 풀려서 질턱대는 길을 걷는 것은 얼굴 찌푸려지는 일이다. 하나 다시 추위가 몰리면 발자국들이 꽁꽁 얼어 엉켜 있다. 그럴 때 그 흔적들은 예사롭지 않다. 그 '쓸쓸한 화석' 은 우리 내면의 자화상과 똑 닮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명물이라고 하면 너무 작위적인가?), 우리 욕망의 무뉘가 그렇고, 사랑의 무뉘가 그렇고, 이른바 성공의 무늬가 그렇다. 그중 나의 것도 찾아본다. 크고 어지러운 것! 누군가의 발자국을 밟고 있고 또 여기저기 누군가의 것에 짓눌려 있다. 그' 겹침'이 사랑뿐이라면 오죽 좋으랴. '발자국' 뒤꿈치 안에 낀 살얼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새긴 碑文 일 것이다. 날이 풀리면 '화석'도 '비문' 도 그저 한 물건일 뿐이다. 모두 '무덤'으로 간 흔적이라서 아름답다.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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