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역대상 3:1~4:43)[다윗 가계의 족보와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꽈벼기 2025. 6. 5. 14:20

[다윗 가계의 족보와 유다의 후손들과 시므온의 후손들]

(역대상 3:1~4:43)

 

1~9, 다윗 왕가의 출발점이 되는 본문에서 저자는 다윗 왕이 처첩들에게서 낳은 아들들 전부를 소개합니다. 다윗 왕가의 번성, 다윗 왕가의 내분, 그리고 다윗 왕가의 계승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3절은 다윗의 아들들을 점점 약해져 가고 있던 사울의 집과 비교해서 소개합니다. 그리고 4~9절에 나오는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의 명단은 14:3~7에 또 한 번 나옵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도를 다윗 왕가의 번성을 보여주는 구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겸손한 종의 집에 복을 베풀어 많은 자손으로 번성케 하십니다.

 

그러나 누구의 가정보다도 더 혹독하게 시련을 겪은 다윗의 가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본 문에는 다윗의 큰 오점 또는 불행을 의미하는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이름은 밧세바, 다말, 암논, 암살룸 등인데 이들이 다윗 왕가에 평지풍파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 가정에 무서운 심판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은혜답게도 다윗의 왕위를 그의 후손을 잇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회개한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아들 솔로몬입니다.

 

10~16, 여기에서는 신정 체제 속에서 파란만장한 역사를 수놓은 솔로몬의 후손들이 소개됩니다. 르호보암에서부터 시드기야까지 남왕국 유다 왕들의 명단만을 기술한 본 문은 이스라엘이 분열한 이후부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까지 해당하는 왕의 계보입니다.

 

한편, 이와는 달리 다윗 왕조는 중간에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임과 동시에 이세벨의 딸이면서도 유다 왕 요람의 아내가 된 아달랴는 남편과 그의 아들이 죽자 다윗 왕가의 씨를 멸절하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위기 중에서도 하나님은 요아스를 남겨 두어 다윗의 왕위가 계속해서 계승되도록 역사하십니다.

 

본 문은 혈통적으로 볼 때 다윗 왕조의 마지막을 보여줍니다. , 시드기야를 끝으로 다윗 왕의 순수한 혈통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종말을 고한 다윗 왕조일지라도 이 왕조는 그리스도가 세운 하늘 왕국의 그림자로서 예표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17~24, 여기에서 다윗 언약의 계속 진행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고냐(여호와긴)의 후손 중에 스룹바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룹바벨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신약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스알디엘이 스룹바벨의 아버지로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로 스룹바벨의 부친은 여고냐의 아들 중 한 사람인 브다야입니다, 그러나 스룹바벨이 어려서 죽었기 때문에 브다야가 대신 가장의 역할을 담당했던가, 아니면 스알디엘이 자손이 없어 브다야가 당시의 계대 결혼법에 따라 스알디엘의 아내와 결혼했기 때문에 스룹바벨이 스알디엘의 자녀로 간주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유다 왕국이 그들 불순종의 죄악으로 멸망했지만 그 이후 다윗의 혈통은 끊어지지 않고 이새의 남은 뿌리인 메시아에게로 이어지고 있다는 중요한 구속사적 흐름을 보여줍니다.

 

4:1~23, 유다의 직계 손 5대의 가계와 함께 단편적인 계보가 산발적으로 언급됩니다. 유다의 소발의 후손, 갈렙의 아들 아스홀의 후손, 야베스의 후손, 그리고 웃니엘, 갈렙, 셀라의 후손 등이 언급됩니다. 단편적으로 유다의 후손들이 소개합니다. 어떤 조상과의 혈연적인 관계가 언급됨이 없이 당시 유명했던 인물들과 족속들이 이곳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크게 번성하여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출현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중요한 인물들을 소개한다면, 기도로써 자기 인생의 고통을 극복한 신앙의 위대한 영웅 야베스, 이방인이지만 유다 지파에 귀속되어 최초의 사사가 된 웃니엘, 모세 때 담대한 신앙의 모범을 보인 갈렙, 금속을 조각하는 전문 세공인들, 바로왕의 딸을 아내로 취한 메렛, 그리고 왕의 농장에서 옹기를 제작한 셀라의 자손들 등입니다.

 

그들 중에는 성읍을 개척한 조상들도 수두룩합니다. 이렇게 유다 지파가 번성함으로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내에서 주도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24~33, 시므온 지파의 가계가 그들의 거주지와 함께 기록합니다. 본 문은 유다의 족보에 비해 매우 초라하게 보이는 시므온의 족보를 기록합니다. 이러한 본 문은 시므온의 자손들, 시므온 자손들의 주소로 되어 있어 그들이 소유했던 영토가 매우 미미함을 나타냅니다.

 

시므온 지파는 시므이라는 인물이 아들 열여섯과 딸 여섯을 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유다의 자손들처럼 많은 자손을 두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세의 인구 조사에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보다 훨씬 적게 계수되었습니다. 시므온이 혈기에 의해 대학살 행위를 벌인 것 때문에 유다 지파의 한구석에서 거주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둘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기 포함되어 있습니다.

 

34~43, 본 문은 두 번에 걸쳐 시므온 지파가 이주한 사건을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하므로 그들이 이주하게 된 이유와 그 근본 동기를 암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방황하는 시므온 지파를 좋은 땅으로 인도하여 안정 속에 거하게 한 13명의 영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강대한 세력에 밀려 유다 남부 네게브 지방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시므온 지파의 13 방백들은 사해 근처 에돔 땅이 인접한 그돌 입구에 진을 치고 대 이주를 감행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선구적인 역할로 거처를 마련하지 못했던 시므온 지파는 훌륭한 거처를 마련하고 양떼를 먹일 목장까지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시므온 지파의 제2차 이주가 뒤따랐습니다. 그 후 안정된 거처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41절에는 시므온 자손의 계보 중에서 히스기야 당시에 드러난 시므온 자손들의 신앙적 용기가 특별히 부각합니다. 그런데 이는 제사장적인 소망을 당시 백성들의 마음속에 불어 넣으려는 본서 기자의 의도였습니다.

 

실상 우리는 하루 살기도 벅찹니다. 그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할 새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가 분주하면 분주할수록 과거를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역사의식이라 합니다. 독재자들은 과거의 독재자를, 부정 부패자는 과거의 부정 부패자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셨는지를 돌아보지 않기에 아무런 가책도 없이 오늘에만 집착하여 우둔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족보에 기록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에게 구원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나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